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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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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04-18 21:14 조회 : 630회 댓글 : 0건

본문

마태복음6:29절을 보겠습니다. (신 9쪽)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솔로몬은 처음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해 그 당시 패권국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도 기록하고 그는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그가 행한 모든 것을 기록하려면 아마 책을 한권을 써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 하나만도 못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내 마음에 내가 한 어떤 행위도 담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라지는 것을 담아 두고 있다가는 정말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들에 피어 있는 백합화가 겨울이 되면 그 흔적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자기가 선한 행위를 한 것을 복음을 위해서 일한 것을 천국에 가져가서 칭찬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102:11절을 보겠습니다. (구 876쪽)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내 날은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풀의 쇠잔함 같습니다. 내 전체 내 일생이 풀의 쇠잔함 같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도 일천번제를 드린 것도 성경을 기록한 것도 다 풀의 쇠잔함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쉽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행한 모든 행위가 풀의 쇠잔함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서로 행위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있고 또 행위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마치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고 그런 행위가 천국에서 인정을 받을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수백 개를 짓고 수만 명을 전도를 했어도 들에 풀과 같이 쇠잔해 없어진다는 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가능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자가 되는 순간 그가 전도를 한 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또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나가는 헛된 것을 그림자 같은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내가 풀의 쇠잔함 같습니다.

그러면 내 평생에 행한 모든 것이 풀에 쇠잔함 같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내가 행한 선하고 의로운 행위도 있고 또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낸 행위도 다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교인들은 그 쇠잔해 가는 것을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144:4절을 보겠습니다. (구 907쪽)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사람은 헛것 같습니다.

이 헛것이 부자가 되어서 너무도 중요하게 자기 안에서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껏 높아져서 마치 자기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양 천국의 모든 것을 가진 양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풀의 쇠잔함 같은 것을 모르고 그것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아주 잠깐이면 사라지고 말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들의 풀과 같이 사라지는 그것을 보고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높아지는 자기를 자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주께서 높여 주시는 그 능력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낮은 자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기를 한 없이 낮추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보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는데 그리고 또 육체가 높아지려고 하는데 그렇게 높아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사악합니까?

겸손의 모양을 내면서 자기가 낮아 졌다는 것을 보이고 있지만 그가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높아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지 바랍니다. 그런 악한 행위를 하면서 두 마음을 품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지를 않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다시 부탁드리지만 다윗을 아시기 바랍니다.

시편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기를 나약한 존재로 인정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그런 육적인 시는 다 영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편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그저 행위로 겸손의 모양을 내고 있습니다.

 

시편92:10절을 보겠습니다. (구 871쪽)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구원입니다

구약의 그림자를 실체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한 없이 낮아지고 있지만 그가 높아질 때는 바로 구원을 받을 그때입니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때로 하나님께서 분복을 주셔서 높아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도는 그것을 바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대통령이 되면 뭐하고 또 대 기업의 회장이 되면 뭐하고 또 사회적으로 유명인이 되면 뭐하겠습니까? 그렇게 높아지는 것은 들의 풀의 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런 것으로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높이시고 있습니다.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 구원의 뿔을 높이 드셨다는 것을 자랑하시고 또 이 세상에서 비록 육체는 비천에 처해 있을지라도 내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아시고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자기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예수와 나는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셨으면 나 역시도 높아 졌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하시고 하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성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와 함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성도는 자기의 높아짐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시편69:29절을 보겠습니다. (구 852쪽)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세상에서는 슬픕니다.

우리는 율법도 잘 못 지키고 또 늘 죄 가운데 있는 내 자신을 볼 때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내 자신을 보면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늘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 행위로는 도무지 구원을 받을 수 없어 슬픕니다. 이렇게 애통하는 자를 주님께서는 위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나를 구원으로 높여 주시고 있습니다.

내 행위를 보면 나는 가난하지만 그러나 주의 구원을 보면 나는 한 없이 높아져 있는 성도입니다 나는 낮은 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저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슬픈 나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들소의 뿔 보다 더 높이 나를 들어 올리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높아지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분복대로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구약을 보면서 마치 육체가 높아지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보다 하늘에서 높아지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5:6절을 보겠습니다. (신 382쪽)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낮아 있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도 없고 그것으로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반드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 내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 기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들에 풀에 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비록 내가 낮은 위치에 있고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도 보잘 것 없이 보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나를 높여 주실 것을 믿는 성도는 그 믿음 그대로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마음을 주고 사는 사람과 천국에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분복입니다 내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는 그 은사가 너무 연약해서 아주 낮아지게 보이고 누구는 그 은사가 너무 빛이 나 높아 보이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은사와 분복을 받아 부한 자가 되었다 해도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사도 바울은 정말 주님의 일군으로 볼 때 대단한 사람이고 또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볼 때는 분명히 부자라고 자랑을 해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부한 것으로 절대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했고 또 자기의 연약함을 자랑 했습니다.

 

고린도후서11:30절을 보겠습니다. (신 298쪽)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다 은사로 부자가 되어서 서로 높아지려고 했을 때 사도바울이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함으로서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낮아져야지 아니 낮아지는 것을 자랑해야지 주님께서 나를 높이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 좋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은사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은사를 나타내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고 또 그런 은사가 빛이 나는 것을 보고 너무도 부러워하고 있고 또 자기도 그런 은사를 받기 위해서 사모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낮은 것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어 사람들이 볼 때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완벽한 사람같이 보일지라도 내가 율법에 의해서는 한 없이 낮아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는 성도만이 헛된 것에 마음을 안 빼앗기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율법의 의는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사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것을 너무 자랑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거둬 가 버리면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율법의 의, 은사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 있지 마시고 그 부한 것이 나중에 낮아짐을 자랑하고 또 그것이 들에 풀에 꽃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는 성도는 자기의 부함을 자랑하기 보다는 자기가 낮아짐을 자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1: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이 시대를 보면 돈키호테 같습니다.

자기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풍차를 보고 대드는 돈키호테 같은 행위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지금은 죄와 싸우는 시대가 아닙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법과 죄와 싸우는 사람은 아직도 초보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또 그런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부자는 재물의 부자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행위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율법의 의로, 은사로 부자가 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 다른 사람과 나를 차별화 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또 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그 은사가 성령에 따라 주신 것은 분명히 맞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부자가 되는 것은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은사를 행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가 나를 빛나게 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빛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반드시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것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정말 믿음으로 했다고 하는 그것도 역시 들에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빛나기 시작하면 우리의 영광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내가 예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 행위들이 떨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그 사라지는 것에 너무도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혈과 육입니다.

자기 자아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성도는 이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지만 아직도 죽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이 혈과 육체 속한 것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싸움은 부자입니다

누구든지 부자가 되는 사람은 반드시 음부의 고통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 부자는 율법의 행위로 부자가 되기도 하고 또 은사를 나타내면서 부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와 싸워서 우리는 절대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안 되는 이유는 부자가 행한 모든 행위가 들의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해 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행위나 은사의 부자를 보면서 너무도 신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있는가는 중요하지도 않고 그가 어떻게 행동을 하고 있는 가를 보고 그를 믿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복음에 대해서 가르쳐 드려도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와 싸우셨습니까?

죄인입니까? 낮은 자 입니까? 그런 자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을 보고 그들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그들의 행위를 보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어떻게 하든지 회를 칠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 은사를 통해 부자가 되려고 그것을 부러워하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매끄러운 말로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면 역겹기까지 합니다.

 

누가복음16:19절을 보겠습니다. (신 123쪽)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 한 부자는 그 당시 바리새인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또 이 시대 영적으로 음행에 빠져 이 부자와 같이 자기들의 행위와 은사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기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착각에 빠져 있는 사람의 대표입니다. 이 부자가 어디로 갔는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차라리 예수를 안 믿고 세상에서 자기 편한 데로 사는 것이 좋지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차라리 신앙생활을 안 하는 것이 낫다고 믿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는 것 보다는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편이 좋다는 것을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면서 내가 왜 그랬는가를 후회를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과 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부자들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이 자기들의 부를 인정해 주지 않는 예수님이 너무 싫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전혀 자기들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상상을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란가 하면 자기들이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그것을 보면 당연히 성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자들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도 부자는 깨닫지 못 했습니다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당연히 아브라함이 간 천국에 자기도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만약에 생전에 자기가 부자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는 죽을 때 까지 몰랐습니다.

자기가 행하고 있는 율법의 의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과 같아 그것을 보면서 마땅히 자기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았습니다. 거지 나사로를 보면서 저는 음부에 들어가도 자기는 자기의 의를 보면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가 되어 부자가 입고 있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쇠잔하여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강조를 해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눈에 분명히 율법을 지키고 또 은사가 좋게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눈으로 보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가 그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부자입니다.

율법의 한 모양 은사의 한 모양이라도 다 부자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는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해도 역시 그 마음에서는 부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무리 아니라 해도 사람은 비교하는 눈과 마음이 있어서 부자가 됩니다.

 

지금은 이 부자와의 싸움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흠 없는 율법의 의를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부자인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부해지지 않으려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성도가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자가 되는 순간 사망이 따라 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다운 그 은사를 우리는 잘 사용해서 복음의 일군으로 합당하게 은사를 나타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은사로 부자가 되는 순간 그에게 역시 사망이 따라 온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이 싸움입니다.

죄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와 법과 싸우는 일은 그래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사실 부자와 싸우는 일은 거의 통제 불능입니다 더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의 의가 드러나고 은사가 빛이 나고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 같이 보여 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물은 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 명예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물지만 생명도 때로는 아까워하지 않고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절대적으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기가 행한 선한 일과 의로운 일은 버리지를 못 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반드시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책망을 듣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행한 선한 일과 의로운 일에 대해서 책망을 하게 되면 원수가 되고 맙니다. 죄인은 자기의 죄를 깨닫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 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나 선한 일과 의로운 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것으로 잘못하다가는 사망으로 간다고 하면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오히려 심하게 공격을 합니다.

 

이것이 부자입니다

그 행하는 일이 들에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하여 지는데도 그것이 눈에 너무 좋게 보이기 때문에 절대로 놓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은 절대적으로 놓지를 못하고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그것이 쇠잔하여 지고 그것이 헛된 것이라고 하면 자기가 행한 그것이 너무도 좋기 때문에 그 마음에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 있기 때문에 원수가 되고 맙니다.

 

성도 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나를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부자가 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부자들은 한 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모르면 구원이 없습니다.

자기의 신앙생활을 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아주 안심을 하고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부자와 같이 음부에 떨어지고 말게 됩니다. 신약의 모든 초점은 바로 부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내 스스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부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8:9절을 보겠습니다. (신 294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부는 들에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해 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얻은 부는 영원히 그대로 있습니다. 성도는 내가 율법을 지켜서 그리고 좋은 은사를 통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철저하게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내가 부자라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은사를 받고 또 행위가 좋을지라도 내가 낮아짐을 자랑해야 주님으로부터 부요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쇠잔해 지는 내 육체의 행위 은사를 통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자는 망 합니다

내 육체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그것이 아니라 그렇게 쇠잔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을 진짜 내 것으로 가져왔습니다. 그것이 성도의 믿음이고 이렇게 부자가 되어 있는 성도는 들에 풀의 꽃과 같은 자기의 행위와 은사에 마음을 빼앗기기 않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없어집니다.

이것과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기의 좋은 의와 선한 행위를 철저하게 버리는 싸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부자에 대해서 강조를 하느냐면 이것과의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싸워야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죄와도 싸워야 하겠지만 그 죄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종결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은혜를 입은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려면 철저하게 나를 없애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성도는 그런 육체적인 것으로 굳이 부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또 부자가 된다 해도 그것을 쓰레기 같이 취급을 합니다.

 

영으로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육으로 부자가 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육으로도 잘되고 영으로도 잘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히 하실 수 있겠지만 사람은 육의 부자가 되는 순간 부요하게 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의 풀의 꽃이 사라지고 마는 인생 자체가 헛되다는 것을 모르면 자기도 모르게 부자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영의 일입니다. 영으로 부자가 되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꾸 육으로 부자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야고보서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1쪽)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성도는 끝없이 시험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시험을 당하느냐면 바로 전에 말씀을 드린 것 부자가 되는 것으로 시험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시면 이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데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시험을 하고 있는가 하면 부자가 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해가 잘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고 행위가 좋아지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단은 부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밝히 보인 후에는 죄로는 더 이상 우리를 사망에 빠뜨릴 수 없다는 것을 사단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죄로는 더 이상 사망에 빠뜨리지를 못하는데 사단이 우리가 죄를 짓게 하겠습니까? 물론 사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가운데 빠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제 우리가 죽지 않습니다.

 

사단이 죄로 시험을 합니까?

죽이지도 못하는 것으로 나를 시험하겠습니까? 정말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더 이상 죄로는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악 중에 출생했기 때문에 죄의 속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지 사단이 죄를 짓게 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의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사단이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이나 성도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사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우리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더 이상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사단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못 믿게 하고 있습니다.

아주 교묘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런 시험을 사단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를 짓는 정욕보다 선이나 의를 행하는 정욕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이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마태복음4:8절을 보겠습니다. (신 4쪽)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 세상은 사단의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선한 일과 의로운 일도 사단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죄만 짓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가장 좋은 영광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신앙생활을 잘 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도 교회를 세웁니다.

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주 교묘하게 가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시험을 하느냐면 바로 부자가 되게 하는 것으로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험이 얼마나 강한가를 아는 사람만이 알고 있습니다. 천하만국의 모든 영광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로서 장로로서 그리고 성도로 의롭게 살아가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 바로 사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게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행위들 가운데 십자가를 거절하고 있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행하기도 하고 있고 또 알고도 시험을 이기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시험을 하는 가를 잘 아시기 바랍니다.

 

절기는 제사 제도입니다

이 제사 제도가 이미 폐해 졌다고 히브리서에서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 절기를 아직도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일반 교인들은 모르고 그저 시키니까 지키고 있고 또 율법주의에 빠져 있는 목회자들도 아무 감각이 없이 그저 자기들이 만든 교회의 규례를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폐해 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연히 이 절기를 안 지켜야 합니다. 이것을 성령의 감동을 받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절기를 지키고 있다면 그것을 거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뼈 속에서부터 부자가 되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늘 그렇게 우리가 가장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도록 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정욕의 끈으로 우리를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 사단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나오면 사람들은 더 잘하고 싶어서 견디지를 못 합니다

 

참지를 못 합니다

자기를 통해서 영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고 또 그것을 너무도 사모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까지도 바칠 정도로 사람들은 자기 신앙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참지를 못하는가를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32:42 로마서강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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