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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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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11-27 20:56 조회 : 491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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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5:13절을 보겠습니다. (신 376쪽)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새변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너희 중에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중에 고난을 안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리고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느 때는 정말 살기 싫을 정도로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어느 때는 너무 기뻐서 주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이라고 하니까 육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당한 고난에 대해서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서 지금은 즐거워하고 있다고 하면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간증이라는 것이 정말 사람들이 피는 담배와 같이 백해무익한 것인데 간증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 니코틴에 중독이 된 것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간증은 니코틴과 같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그 한 가치를 물고 깊이 빨라들으면서 당장 느끼는 그 기분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담배를 피울 때는 그 기분에 너무 좋아서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담배가 얼마나 백해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간증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그러나 그 간증을 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합니까? 간증을 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용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든 안 돌렸든 그것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악한 것이라고 야고보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한 일입니다.

고난을 당했는데 내가 기도를 해서 그 고난을 이겨냈다고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 주셨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악을 행하면서도 이 시대는 너무도 간증을 하고 싶어 합니다, 구역 예배 같은 경우에는 이런 간증을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에서 이겼습니까?

누가 기도를 해서 고난에서 벗어났습니까? 야고보서는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 하면 응답을 해 주셔서 그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당하는 자가 있으면 기도를 하면 됩니다. 그것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그 이상입니다. 초대 교회에 고난당하는 자들이 과연 그 고난에서 벗어났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기도를 하면서 고난을 기꺼이 자기 몸으로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는 기도를 하면 마치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43쪽)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성도는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고난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 고난을 기도를 해서 벗어나려고 밤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한 풀이 하는 것을 기도의 형식을 빌리고 있을 뿐입니다.

 

고난을 벗어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악한 일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시대는 고난을 받으면 그것에서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들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겠지만 그저 종교인으로서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고난을 받으니까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어느 누구가 고난을 기도해서 벗어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기본이 되는 이런 성경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 육체의 고난을 당하는 것을 이기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성도는 그것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없는 자는 어떻습니까?

그것을 받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에서 벗어나거나 이기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기도를 하는가 하면 그 고난에서 벗어날 때까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을 누가 들어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들어 줌으로 해서 그 영혼이 그것을 자랑하게 만들고 악에 빠지게 하고 있습니다.

 

고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어느 사람이 자기가 구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있지만 사법고시에 합격을 하기 위해서 그들이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까? 심지어는 몇 번씩 떨어지면서 기어이 그것에 합격하기 위해서 지금 당하는 고난을 기꺼이 참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기꺼이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벗어나려고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중에서도 나를 구원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와 가라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고난 한 가지만 보아도 성도는 기도를 하면서 그것을 받고 있지만 가라지는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맞는다면 야고보는 분명히 너희 중에 고난을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고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기록을 했어야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그 고난에서 벗어나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천국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은혜로 받았으면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교회는 고난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고난을 줄 수 있습니까?

심지어는 정치인들까지 교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그들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고난을 받아야 하는 그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아래서 자기들이 누리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고 있습니다.

 

너의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모두가 응답을 받는다는 그 잘못된 생각에서 이런 말씀을 보고도 자기들 마음대로 성경을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도 하면 응답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생각입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응답은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보다 더 귀한 천국을 얻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하면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데 그 고난을 기도해서 응답을 받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에게 육체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 들었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고난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고난은 받아야 합니다.

성도와 가라지는 다릅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다 성도가 아닙니다. 정말 내 안에 복음이 있는 성도는 설령 자기가 죽을병이 들었어도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있고 그곳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라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왜 고난을 안 받습니까?

그것은 자기 육체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생각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라면 자기에게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그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는가 하면 자기 육체의 연약함으로 자기가 영의 일을 생각하지 못할까 하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시편34:19절을 보겠습니다. (구 826쪽)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고난을 안 주시겠습니까? 아니 세상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까지는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목표로 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많은 고난 중에서도 참고 견디고 있습니다.

 

고난이 많습니다.

아니 평생 고난의 연속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고난이 없다면 그는 의인이 아니라고 해도 맞습니다. 분명히 성경에서 의인이 고난이 많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많은가 하면 자기 생명을 잃기 까지 고난이 많습니다. 실제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그런 고난이 왔고 그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주십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고 오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건져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적으로 당하는 고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육은 우리의 영의 일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이 아닙니다,

고난도 이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를 믿고 싶어서 교회에 나가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많은 고난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 고난을 이기고 자기가 이제는 마음 편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자기가 기도를 했는데 주님께서 자기 기도를 들어 주셔서 이제는 주일도 지키고 십일조도 낸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인 고난이 아닙니다.

육적인 고난입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당하는 고난이 겨우 그런 종교 활동을 하는 것으로 당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함께입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를 전하려면 반드시 율법을 폐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율법을 폐하면 어떻게 됩니까? 교회 안에 있는 다수의 율법주의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고난을 당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아주 쉽게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천만 명의 율법주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율법을 폐하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받을 고난은 상상을 초월하게 됩니다. 먼저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직까지도 이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단의 괴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단이 됩니다.

다수의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공격을 받게 됩니다. 아마 십일조가 폐하여 졌고 그것이 악이라는 그리스도의 편지의 말씀이 전해진다면 이단이나 정통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습니다,

자기 행위로 의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그 의로 의인이 된 사람은 거저 의를 얻었기 때문에 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종교인으로 고난을 받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와 종교인은 다릅니다.

성도는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자기가 기도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성도는 자기에게 오는 고난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자기 영혼을 구원해 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고 종교인은 당장 그 고난에서 벗어나려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성도인가 아니면 종교인인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그런 고난을 안 받으려고 한다는 자체가 잘못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성도는 그것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우리에게 올 영광이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부활과 또 천국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담대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육적인 고난이 아닙니다.

주일을 누가 못 지키게 합니까? 십일조를 못 내게 하고 있습니까?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그것을 방해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세상 모든 종교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같은 고난을 당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서 그 고난에서 벗어났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잘 믿어서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고난입니다.

그것은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입니다. 의인은 이런 고난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거의 모두가 율법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 율법을 폐하라는 복음이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으면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참지를 못하고 성도들을 고난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하박국3:18절을 보겠습니다. (구 1305쪽)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즐거워합니까? 그저 이 세상에서 자기가 기도한 것이 응답을 받아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런 자들은 나중에 주님께서 오실 때 그 눈에서 피눈물을 흘릴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성도가 즐거워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는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나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알면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찬송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이라고 하니까 그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구원을 성령의 감동으로 확신을 받은 성도는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즐거워하고 있고 그것을 입술로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찬송가가 아닙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부르고 있는 찬송가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모든 구속의 일을 자랑하는 것이 찬송입니다. 내 마음이 기뻐서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찬송이라는 말씀입니다.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이 찬송도 너무 삐뚤게 가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런 감성적인 찬송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찬송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구원을 해 주셨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늘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찬송입니다.

그저 교회 안에서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를 하는 것이 찬송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찬송가를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말하라는 말씀입니다,

 

찬송을 너무 모릅니다.

자기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를 아는 성도는 저절로 찬송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언제부터 찬송가를 만들기 시작을 했지만 그 노래 가사를 보면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것은 찬송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고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러나 그 고난이 자기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찬송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고난 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견디려면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 성도를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고난을 받지만 영혼은 구원을 받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당하면서 기도를 하고 또 구원에 확신을 갖고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고 그런 찬송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바로 아시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기도를 하고 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즐거워하면서 찬송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5: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76쪽)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참으로 이 야고보서의 말씀으로 인하여 교회가 이상하게 변질이 되고 있습니다. 병이 들었다고 하니까 육체의 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를 보면 거의 병원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병을 다 고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그것을 광고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늘이 올라가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난 후에 또 그런 역사들이 일어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런 성경 말씀을 그저 문자적으로만 보고 있다 보니까 그것이 의미하고 있는 뜻을 모르고 있고 또 병자를 고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병자를 고치는 곳입니까?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절대로 그런 행위를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런 역사를 전혀 부인하고자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성도가 병이 들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맞습니까? 아니면 그 병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습니까?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다보니까 병을 고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신약시대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만 해도 신약 성경이 기록이 안 되었습니다. 단지 그 시대는 구약 성경만 있었습니다. 그 구약 성경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신약과 구약을 같이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전하는데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그 시대 예수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 아주 작은 마을에서 예수가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것을 물론 500여 문도들이 보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약 성경도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사람은 이미 하늘에 올라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모든 성경이 한권의 책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시대에 병자를 고치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경이 있습니다.

제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자칭 성도라고 하는 그들이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도를 받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모르고 그저 종교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성도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까? 물론 히스기아 같은 특별한 경우도 있었지만 엘리사도 죽을 병에 걸려서 죽었다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병원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자체가 샤머니즘이라는 것을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병을 고치는 병원이 있는데 왜 교회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모르고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완전히 기록이 되어 있고 인쇄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병자를 고치려고 하는 그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병입니까?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고 묻는 것이 교회 안에 육체의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사도바울도 정작 자기 병은 고치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 역시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고 또 속 사도라고 부를 정도로 복음의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믿지 않은 사람들의 병은 고쳤어도 정작 자기들의 병은 고치지를 못 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5:30-32젏을 보겠습니다. (신 97쪽)

"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 병든 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잘 아는 육체적인 병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암이 걸렸다든지 당뇨가 걸렸다든지 또 여러 가지 불치병이 걸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교회 안에서 다수가 이런 말씀을 보고 마치 그런 육체의 병에 걸린 것으로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비방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면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든 자가 누구인가 하면 아직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병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병든 자입니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이 병든 자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병이 든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육체의 병이 든 사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병이 들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병든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병 같으면 자기 몸이 아프므로 병이 들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병은 진리를 알기 전에는 자기가 병이 들었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병은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 깨닫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역시도 병이 들어 있지만 자기들의 행위를 보고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병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병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야고보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병이 아닙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육체의 병을 고치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그리고 제자들이 수많은 병자들을 고친 것을 제가 부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병자들을 고친 것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병자를 고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육체의 병이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고침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몸에 병이 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지만 교회가 너무 샤머니즘에 빠져 마치 주술을 하는 것과 같이 기도를 하면서 병자를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의원입니다.

그것은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병이 든 자도 의원이 고치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을 미리 챙기기 위해서 검진을 받기 위해서 의원을 찾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병이 들었을 때 의원을 찾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달을 한 시대가 아니라 2000년 전이라고 생각하면 답은 더 쉽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왜 오셨습니까?

병든 자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회개의 의미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안 믿던 사람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그것이 회개입니다.

 

병든 자입니다.

영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병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무슨 병이 들어 있는지를 모르고 마치 자기들이 예수를 잘 믿는 것과 같이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무엇이 다른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모릅니다.

그러나 죄인은 자기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도 역시 십일조로 주일로 의인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병에 들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병을 알아야 장로를 청해서 기도를 받을 수 있는데 장로도 모르고 있고 병든 사람도 자기가 어떤 병에 들었는가를 모르는 참으로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로입니다.

이 시대 목사입니다. 이 시대 장로가 아니라 성경의 장로는 이 시대 목사와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장로는 사실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목사를 장로라고 부르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굳이 장로로 부를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뜻을 바로 알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장로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성경의 호칭조차도 정립이 안 되어 있는 교회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는 장로가 없어서 누구를 불러야 할지 모릅니다. 목사는 있어도 종교인으로서 목사는 많아도 성경에서 말씀하는 장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가정 교회에서는 장로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옳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 역시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호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모른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호칭부터 개혁하는 것이 교회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교회 안에 이상한 장로들이 있어서 그것을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시편23:5절을 보겠습니다. (구 818쪽)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장로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병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영적인 병이 들어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이제까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 행함은 율법을 버리는 행함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성화 그리고 은사를 통해서 자기의 의가 드러나고 있고 그것이 병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병입니다.

육체에 병이 들어 있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어도 바리새인과 같이 영적인 병이 들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으로 성화로 그리고 은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거절하는 영적인 병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 자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를 바로 알면 자기가 병이 들었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병이 든 사람은 장로를 청해서 기도를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장로는 그들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기름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말씀합니다, 기름을 바르고 기도를 하라고 하는 말씀은 성령으로 기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시편에서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셨다는 말씀은 원수 율법의 목전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의 가장 큰 상은 바로 그 영혼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다고 하는 말씀은 성령이 내게 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성도는 구원이 잔이 넘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병든 자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 세상 사상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율법주의가 되어 있고 성화주의가 되어 있고 은사주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다 영혼을 죽게 만들고 있는 병입니다. 그런 병이 걸려 있는 사람은 자기가 병이 걸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은사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감리교나 침례교 같은 경우에는 성화주의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병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병이 들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장로를 청해 기도를 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병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장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로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장로가 다 그 병에 걸려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병에 걸려 있으면서도 육체적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오히려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병이 걸려 있는 줄을 모르는데 과연 그에게서 배우는 교인들이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야고보서를 통해서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바로 알아야 병이 들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야고보서를 바로 해석해서 가르치는 장로가 없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다 병이 들어 있습니다. 육체의 병이 아니라 그 영혼이 죽는 병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해석이 안 되니까 그저 문자 그대로 육체의 병으로 생각하고 교회가 점점 더 깊이 샤머니즘에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35:25 로마서강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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