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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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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11-27 20:54 조회 : 625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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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5: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76쪽)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욥의 결말입니다.

그것은 그가 율법주의자에서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성도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하기를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욥과 같은 율법주의자는 없었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쌍히 여겨 주셨습니다. 욥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의를 드러냈던 사람입니다, 아니 욥보다 더 부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부자인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또 긍휼히 여겨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욥에 대한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욥은 의인이 아닙니다.

가장 악한 자입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면서 자기가 한 행위를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에 달려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욥과 같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또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 역시도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기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욥의 결말이라고 하니까 마치 그가 이 세상에서 처음 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은 그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욥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이 누구를 만나로 오셨습니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욥은 죄인이 아닙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보아서 알겠지만 욥은 하나님이 만나시지도 부르시지도 않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순전함을 이야기 하니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을 회개 하게 하셨습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부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서 욥과 같은 사람도 인내를 해서 회개할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욥은 자기의 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을 사람입니다. 그런 악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서 그 결말에 회개를 할 수 있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들으라 부한 자들아 그 부한 자들에게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던 욥도 인내를 해서 회개를 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서 욥과 같은 부자도 회개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욥은 예표입니다 이 시대 부자들에게 욥과 같이 하시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런 예표를 통해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되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욥과 같이 부자가 되려고 하다가는 이제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사람들은 욥의 결말을 육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욥과 같은 의인은 부르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자비하시고 또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서 이 세상 이성으로 가장 의로운 사람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가장 악한 욥을 회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 역시 욥과 같은 사람을 회개 하게 해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결말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성경의 수많은 예표들을 통해서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악을 행하고 있다면 이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고 욥의 결말을 아는 성도는 절대로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이나 땅이나 그 밖에 무엇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다만, "예"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예"라고만 하고, "아니오" 해야 할 경우에는 오직 "아니오"라고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여러분은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서6: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58쪽)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맹세

사전에서는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을 말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임무를 받거나 약속을 실행하는 것을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세상의 이성적 상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속을 하거나 자기 임무를 맡았을 때 이렇게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물론 그 임무를 충실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반드시 약속을 지키는 사람도 간혹 가다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아주 작은 일에 대해서 그렇게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늘 말씀을 드리지만 이 세상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알면 이 맹세라는 사전적은 뜻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누가 맹세를 하고 또 누가 그것을 지키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사전적인 뜻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전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전적인 뜻을 알았다면 성경에서 맹세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또한 바로 알고 있다면 맹세에 대해서 바로 정립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맹세하기를 좋아하고 있고 자기가 그 맹세한 것을 이루었을 때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상상이상으로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입니다.

굳이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가 다니는 종교에서도 그렇고 세상에서도 맹세를 이루고 나면 그것으로 자기를 과대평가를 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자기의 의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맹세를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누구라도 그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랑합니까?

특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 자랑을 많이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고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맹세를 이루고 나면 그것을 간증이라고 하면서 자랑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랑을 듣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자기도 자랑하고 싶어서 맹세를 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맹세의 사전적인 뜻입니다.

그것을 사람이 하고 또 그것을 이루고 나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목사가 간증을 하는데 자기가 이렇게 살기로 했는데 그렇게 살아서 너무 기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까지도 우리는 자랑해서는 안 되는데 자기가 목사로서 그렇게 산 것을 자랑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사단에게 미혹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가 없는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알고 이 세상의 학문으로 공부를 해서 직업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고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때에 자기 보다 더 큰이가 없음으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를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맹세의 기초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맹세를 할 때는 가장 큰 자가 작은 자들을 위해서 하는 것이 명세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기가 맹세를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맹세에 따라 어느 사람은 그것을 실제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작은 자도 큰 자에게 맹세를 하고 그것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맹세를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아야 합니다.

맹세라는 것을 누가 이루는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고 자기를 가리켜 맹세를 하셨는가 하면 그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한분 만이 맹세를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약속에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 어떤 약속을 하더라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없으면 그 약속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오늘 당장에는 능력이 나에게 있었던 것 같아도 우리가 욥기를 보아서 잘 알고 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살기로 맹세를 했을지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능력입니다

비단 욥뿐 아닙니다. 인생은 하루아침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잠을 자다가 비명횡사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것에 대해서 다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오늘 건강해서 내일까지 그 삶을 보장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까 이 말씀이 잘 이해가 안 될지라도 실제 우리 주변에서는 밤새 안녕이라는 말 그대로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가 맹세를 하면 뭐 합니까?

명세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만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같이 연약한 존재는 사실 맹세를 해서도 안 되고 그 맹세를 이룬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사람들이 이루는 그것을 보고 착각에 빠지고 있습니다.

 

맹세를 하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생명은 수에 셀 가치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맹세를 해서도 안 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또한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가리켜 맹세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더 큰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맹세를 이루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다는 것을 히브리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고도 아니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보고도 사람들은 현재 자기를 보면서 맹세를 하고 있고 사단은 교회 안에서 실제 그 맹세를 이루는 사람들을 만들어 놓고 그들을 통해서 사망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6:17절을 보겠습니다. (신 358쪽)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천국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그 뜻을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만 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그 일에 맹세로 보증을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맹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맹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에게 그 뜻을 변치 아니하심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또 그 일에 보증을 받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맹세는 하나님께서 하시고 또 그 일에 보증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보증으로 성경을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약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보증하기 위해서 아니 그 약속을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오셔야지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은 성도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냥 약속을 하시고 기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 천국은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모든 것이 다 비유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말로 가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막연합니다.

사실 천국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는 천국에 대해서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 자체가 천국을 모르고 있다고 자기 무식함을 스스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뜻이 변치 아니하심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우리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성경에서 우리가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천국의 비밀을 알고 믿을 수 있게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지 않으면 이 천국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 일에 맹세로 보증을 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이루시려고 우리에게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 주셨다고 고린도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맹세를 분명히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맹세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맹세하기를 좋아할 것이고 자기를 아는 사람은 맹세를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모든 본질은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부터의 출발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영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성령에 대해서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성령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고는 이런 말씀들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성경을 다 사람의 이성으로 보고 있고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약속을 받은 성도들에게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에 보증을 해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열심이 넘쳐서 맹세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 맹세가 어떠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5:1-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57쪽)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예루살렘의 패망입니다.

북 유다가 망할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한 사람도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가 안 망하고 있습니까? 겉으로 보는 나라는 안 망하고 있을지 몰라도 예레미야 시대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한 사람이라도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없습니다.

정말 이 시대는 종말을 맞아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면서 이 시대 가난한 성도들을 구원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과연 이 시대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누구 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선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자부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만 그랬습니까? 노아의 홍수 때도 다 악한 자들만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때는 어땠습니까?

의인 열 명만 있었어도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갈 때는 어땠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광야라는 교회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성경이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구하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 믿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역시도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타락을 해서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짓 맹세를 합니다.

자기들이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 맹세를 합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망해서 포로가 된다고 했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 거대한 바벨론도 이기게 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누가 믿음이 있습니까?

예레미야가 믿음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가 믿음이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해 보나마나 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주변에 공산주의 국가가 있어도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보이는 외적인 모습을 보면서 잘 믿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거짓 맹세입니다.

무엇이 거짓 맹세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와주시고 또 자기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거짓 맹세를 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데도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거짓 맹세를 하면서 백성들을 안심시켰고 그들은 결국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그들이 율법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고 행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거짓입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천국을 이야기 하고 있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맹세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스라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하는 맹세가 얼마나 거짓되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자기들이 행하고 있는 행위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맹세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자체가 거짓됩니다. 설령 그가 혹시라도 자기 입으로 한 맹세를 이루었다 해도 그 맹세 자체가 거짓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의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지 육체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도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 안에서 맹세를 하고 있고 또 교인들에게도 맹세를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을 믿는 일은 주님께서 다 이루신 일을 믿는 그것입니다. 내가 맹세를 하고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자체가 이미 거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거짓을 누가 이루게 하는가 하면 사단이 그런 자들을 세워놓고서 맹세를 이루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5:33절을 보겠습니다. (신 7쪽)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이스라엘은 맹세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그것을 구약에서는 서원이라고도 합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그 맹세를 했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맹세를 하거나 서원을 하면 그것을 반드시 지키려고 했습니다. 사실 구약의 율법의 맹세나 서원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보다보니까 맹세를 하기 좋아 했습니다.

 

왜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까?

구약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나면 폐하여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히브리서를 보아서 알겠지만 맹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만이 맹세를 이루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세상의 이성으로 생각하면서 아무나 맹세를 하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상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사상입니다. 또 율법에서 맹세를 하면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제 오셔서 다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라도 맹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가장 쉽게 맹세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나와서 어느 정도 자기 신앙이 자랐다고 하면 가장 먼저 하는 맹세가 바로 십일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이제 십일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 그 십일조에 대해서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자기가 사는 동안 십일조를 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토록 십일조를 합니까?

그리고 십일조를 반대를 하면 아주 심하게 반발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다 자기가 맹세를 했고 또 그것을 이루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십일조를 한다는 것이 얼마다 대단한 일입니까? 누군가 하나님을 안 믿더라도 자기 소득의 십일조를 따로 떼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하면 아마도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입니다.

왜 사람들이 맹세하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바로 그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것을 사단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의 의가 살아나기 때문에 그것으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맹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맹세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약속을 실행하거나 목표를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세상의 일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입니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맹세를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맹세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맹세를 한다 해도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저 육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맹세를 하고 또 그것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너무도 쉽게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맹세할 수 있습니까?

영의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맹세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맹세의 기본을 모르다 보니까 쉽게 자기가 서원을 하고 있고 맹세를 하면서 그것을 지키는 자신을 보면서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길입니다.

이 시대 주님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그 말씀을 얼마나 어기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느 것을 정해서 하고 있다면 그것은 다 맹세에 속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입 밖으로는 맹세를 하지 않았을지라도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하는 맹세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그것을 왜 지키고 있습니까? 자기 마음에서 맹세를 했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대 교인들과 같이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지는 않았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왜 안식일을 그토록 철저하게 지켰습니까?

그것은 자기들의 조상이 하나님과 언약을 했고 그 언약이 지금 하나님을 믿는 자기들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왜 지키는가를 바로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에서 이미 맹세를 했기 때문에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에서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철저하게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되고 또 주일이라는 날을 그렇게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같이 이 시대 역시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지키고 있고 그런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 뜻을 모르고 아직까지도 맹세를 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맹세는 행위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마음으로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율법주의에 깊이 빠져 있겠습니까? 굳게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부인을 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입니다.

 

마태복음5:37절을 보겠습니다. (신 7쪽)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우리는 맹세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것을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모르는 육체로 사는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수도 없이 많은 것을 맹세를 하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어떻습니까?

영의 일을 알기 때문에 맹세를 하지 않습니다. 영의 일을 내가 맹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았을 때 옳다 옳다 하고 또 아니라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맹세를 하는 순간 그것이 다 악으로 좇아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명세를 하고 그것을 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 악이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을 보고 거기서 말씀을 깨달았으면 그것이 옳으면 옳다 할 것이고 그것이 아니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그 이상은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으로 좇아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악입니까?

십일조를 하는 것이 악입니다. 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악입니다, 제가 연보를 하지 말고 또 한 날을 정해서 예배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십일조나 주일을 지키는 일 그리고 행위로 하고 있는 그 모든 일이 이에서 지나는 것이고 다 악으로 좇아 나는 것임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옳다 옳다 하거나 아니다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에서 좇아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이에서 지나는 것을 너무도 많이 하고 있고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악입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사람의 모든 행위는 다 악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나면 옳으면 옳다 하고 또 아니면 아니라고 하는 그것이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서 지나는 모든 것은 다 악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에서 지나는 것을 하면서도 그것을 믿음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성경을 보다보니까 종교가 되어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교회 안에서 악을 행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그 악을 행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일입니다,

그것에서 지나는 모든 일은 다 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이 악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달아야 악을 행하지 않을 수 있는데 악을 행하면서 그것이 선이라고 생각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니까 그 악을 행하는 일이 더욱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왜 오직 믿음인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는 이에서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악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이 악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에서 지나는 일에 너무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영의 일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뭐가 있습니까?

그것을 마음으로 믿는 그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다 이에서 지나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겠네 하면서 비웃으려고 합니다.

 

안 해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나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갈 수 있게 전도의 미련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셨을지라도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맹세를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위해서 십일조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었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이에서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서 지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데 이 시대는 악해서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죄 정함입니다,

이에서 지나는 모든 것은 행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악한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정죄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수많은 행위들을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삼가 지키고 있다는 것은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가 정죄하고 있습니다.

자기들과 같은 행위를 하지 않으면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에서 지나는 것은 다 악으로 좇아 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고 이에서 지나는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그것이 다 악으로 좇아 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악을 행하기를 너무 좋아해서 교회 안에서 수도 없이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왜 지키는가 하면 바로 맹세를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모든 일이 사실은 그 교인들의 마음에서 이미 맹세를 했기 때문에 지켜지고 있고 그것이 사실은 다 악으로 좇아 난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사람들은 명세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창하게 하는 맹세만 맹세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이에서 지나는 것을 행하겠다고 하는 모든 맹세가 다 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그렇습니다. 다 믿음에서 지나서 나는 것이고 그것이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정죄함을 면하려면 믿음에서 지나는 것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35:25 로마서강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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