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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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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11-13 20:40 조회 : 372회 댓글 : 0건

본문

시편37:40절을 보겠습니다. (구 829쪽)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말씀을 보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이런 말씀을 육적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라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반대하고 있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자기를 육체적으로 도와 건져 주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사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악인에게서 건짐을 받았습니까? 도리어 악인에 의해서 순교를 당하고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처음 순교자가 누구입니까?

스데반 집사입니다. 그가 누구에게 순교를 당했습니까? 바로 이스라엘의 악인들에게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아서 순교를 당했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데반 집사는 악인에게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육체는 돌에 맞아 죽는 순교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악인이 누구입니까?

이 세상 사람도 물론 악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부자들이 악인입니다. 그 악인에게서 육체적으로 건짐을 받고 도우심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도는 육체적으로는 그 악인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고 살아갑니다.

 

얼마나 많은 순교를 당했습니까?

물론 전부가 순교자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초대 교회를 지나고 교회에 의해서 순교를 당한 사람이 수천 만 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교회가 부자가 되어서 심지어는 왕까지도 바꾸고 또 종교 재판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천주교에서만 있은 것이 아니라 기독교에서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도의 삶입니다.

내가 진리를 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더 핍박을 받습니다. 내게 진리가 있으면 세상은 나를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상이 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고 또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부자를 악하다고 하는 성도는 당연히 세상에 의해서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길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정도 참아야 합니까? 내 육체의 생명이 끝이 날 때까지 그렇게 길이 참아야 합니다. 그것을 참지 못하면 결국 진리를 배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우리가 길게 살아 보아야 백년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생명은 불완전해서 아프기도 하고 또 슬픔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의 생명은 썩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는 완전한 형상입니다. 천사들도 우리가 부활을 하고 나면 판단을 받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활입니다.

이 둘을 다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가끔가다가는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도 그런 분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꿩도 먹고 알도 먹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국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고 있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기꺼이 참고 견딥니다. 천국에 있는 부활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힘이 들고 때로는 내 생명을 빼앗으려고 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 정말 하늘의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고 있다면 참을 수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셔서 참을 수 있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농부입니다.

그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귀한 열매를 바라며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농부도 자기가 씨앗을 심고 그것의 열매를 바라면서 참고 또 참으면서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습니다.

 

베드로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87쪽)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귀한 열매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부활을 해서 주님 앞에 나타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보다 더 귀한 열매가 어디 있습니까?

농부는 농사를 지어 귀한 열매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바라면서 길이 참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무엇을 바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구원입니다.

이 세상의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이 세상 종교에서 말하는 그런 거짓 구원이 아닙니다. 성도는 영의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 안에 탄생이 되어 있는 영이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의 열매가 되어서 신령한 몸을 입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길이 참고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 부자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그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 열매입니다. 구원의 열매를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그 날을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래 참습니다.

곧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벌써 2000년이 지났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이고 거짓과 같이 보여 지지만 주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리 오래 참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시간으로는 정말 오래 참고 기다린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아직 짧은 것 같습니다.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님이 오실 때의 징조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교회의 징조를 보면 아직은 때가 아닌 것으로 믿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 죽기 까지는 주님이 오시지 않을 것으로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모릅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로 이 세상에서 비록 고난과 환난을 받으면서 살아가다 잠을 잘 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분명히 우리를 깨워 영접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구원할 성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내가 되고 또 나를 통해서 이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정말 말세의 때에 길이 참으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 또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런 생명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는 아닐 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귀한 열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환난 가운데 산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성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있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은 성도라는 것을 알고 참고 또 참으면서 주님의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야고보서5:8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여러분 참으십시오.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참기가 힘이 들면 계속해서 참으라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야고보는 계속해서 참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앞서서 말씀을 드렸지만 죽을 때 까지 참아야 합니다. 그렇게 참는 성도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죽을 때까지 이 세상에 있는 부자들에 의해서 아니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또 내 마음에서도 끊임이 없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솔직히 얼마나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부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좋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정말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는 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이성적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이라고 하니까 그것이 부자라고 하니까 그것을 참으려고 하니까 얼마나 견디기 힘들겠습니까? 사실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우리가 길이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령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고 싶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인생의 이성으로는 너무도 바르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자가 되지 말고 길이 참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성도입니다.

우리 성도는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 못 박았습니다. 사실 이것을 못 박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입니까? 그런 고통의 시간을 이기고 길이 참고 견뎌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또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눈물을 흘려 가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3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참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참았는가 하면 주의 이름을 위해서 참았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바라면서 참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입니다.

그리고 예수입니다. 이 두 가지의 싸움입니다. 율법의 의미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는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율법을 버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정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맞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지도 않고 성화가 되려고도 하지 않고 은사를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정말 때로는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일입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는 너무도 당연합니다.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믿는 것 같은 생각이 되는데 그저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하는 그것이 때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볼 때는 제가 대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저 역시도 사람입니다, 복음의 비밀을 전하고 있지만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확신을 주고 있어서 그런 회의가 들 때에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사실 복음은 힘이 듭니다.

율법은 보이기 때문에 내가 감정적으로 느끼고 보고 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서 육체적으로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내 마음으로 믿어지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받은 이 은혜의 복음을 내 이웃에게 전하는 그 일 뿐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가진 자를 도와서 다른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몸으로 무엇을 하지 않으면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자기 몸으로 하려고 하고 있고 사단은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점점 더 율법주의로 변하고 있고 그 안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자꾸 일을 만들고 있습니다.

 

일을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킵니다. 또 은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성화가 됩니다. 그러한 행위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증표로 사람들의 이성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그것이 부자가 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전혀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때로는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을 주시고 있습니다.

행위를 하지 않고 믿음을 주시는데 그 믿음을 가지고 행위를 하지 않으려니까 정말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길이 참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에는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참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부자가 되는 것을 참았다는 말씀입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저희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그 구원자를 알기 위해서 게으르지 않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부지런한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될 수 없다 보니까 사람들로부터 정죄를 받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어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도는 육체로는 참고 견뎌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를 보면 그들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너무 부자가 되어 있고 종교에 빠져 거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육체의 일만 생각하고 영의 일은 도무지 모르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85쪽)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마음을 굳게 하라

사람들은 행위에 대해서는 너무도 굳게 하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에 대해서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가 타락을 하면서 종교화 되다 보니까 행위를 통해서 자기들이 성도라는 것을 보이고자 노력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위는 너무 잘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굳은 신념을 보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행위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율법주의다 보니까 사람들이 그 안에 있을 때는 자기 행위로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겠지만 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고와의 아버지가 되고 과부의 눈을 실망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게 산 욥이라 해도 그의 모든 재산과 그리고 가족까지 잃고 나니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육체의 병을 보면서 탄식을 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고 있을 때는 전혀 깨닫지 못 합니다. 내가 주일을 지킬 수 있고 내가 십일조를 낼 수 있고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있고 성도와 같이 살 수 있을 때는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가 너무도 당연하고 모든 사람도 나와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잃고 나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위라는 것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를 보면서 그것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굳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이 행위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낸다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는 바리새인과 주님께서 나를 도와 주셔서 내가 십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를 하는 지금의 교인과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똑같습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이 안 도와주셨다고 생각했습니까? 그들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와 주셔서 이레에 이틀을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욥과 같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행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는 노력을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고 저 사람은 포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 눈에는 역시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위는 분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에 따라 어느 사람은 굳게 선 것처럼 보이고 어느 사람은 방종을 하는 것같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행위로는 굳게 설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다 보여 주셨습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어본 아담이 범죄를 하는 것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다릅니다.

내 행위는 나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내가 하는 행위가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구속의 일입니다. 죄인인 사람이 하는 행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점도 흠도 없는 주님께서 하시는 구속의 일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고 주의 강림이 가깝다는 것을 믿으라는 그 말씀은 바로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내 마음이 믿고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니까 마치 내가 스스로 마음을 굳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스스로의 마음은 늘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일을 마음으로 믿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1:2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87쪽)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하시고 있는가 하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하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저가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셔서 우리가 마음을 굳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내 마음이 주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굳게 서 있습니까? 부자가 되려고 행위에 빠지지 않고 있습니까? 정말 성도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를 성경이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영의 일을 모르다 보니까 그저 육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내 마음에 주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종교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주시고 있는 성도의 믿음이 무엇이 다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우리를 견고케 하시는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모든 종교는 다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릅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누누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부자가 되기보다는 오직 믿음으로 굳게 서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자를 보면 너무도 부럽고 또 나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어느 누가 그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역시도 사람인지라 제가 행위로 부자가 되어서 칭찬을 들으면 좋습니다. 이 복음을 주님께서 주시지 않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이 세상의 종교인들과 같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해가 안 됩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 이 세상의 이성으로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는 계속해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을 안다고 해도 사람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사실 모든 행위를 다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람의 이성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의 비밀입니다.

 

마음입니다.

아니 성령의 감동입니다. 이 세상 종교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성도들에게 비밀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아무리 지혜가 있고 유명한 신학자라 해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저 종교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니까 이 세상의 신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이 세상 종교입니다.

그런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셔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 안에 있어야 마음을 굳게 하고 주의 강림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종교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때로는 고독하고 외로울지라도 주의 강림을 기다리면서 성도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율법주의자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줄도 모르고 공항 상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어떤 신앙생활의 행위를 하지 않고 오직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는 그것이 내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지만 율법주의자들은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하는 줄을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말로는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종교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행위를 가지고 믿음이라는 아주 이상한 주장들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행위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미혹하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인생은 욕심과 정욕을 떨쳐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행위가 사람의 이성으로 너무 좋고 그것을 통해서 믿음이 좋다는 인정을 받고 또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하고 존경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가 않아서 이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성령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성령이 오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성경을 본다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생의 욕심과 정욕을 떨쳐 버려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이 오셔야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다 성령을 받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는가 안 받았는가 하는 것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 마음이 부자가 되어 있는가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행위를 하나라도 지키고 있고 또 성화가 되려고 하고 있고 은사를 통해서 나를 나타내고 있다면 그는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5:9절을 보겠습니다. (신 382쪽)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보고 있습니까? 성경을 보는 이유를 알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믿음을 굳게 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종교에 빠져 교회 안에서 행위에 열심을 내지 말고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지금 얼마나 행위에 빠져 있는가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성경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싸움입니다.

사람은 늘 행위로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행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구원이 없습니다. 야고보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말씀하고 있고 성경 전체가 다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종교적인 행위에 빠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영생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모릅니다.

아니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이단이라고 까지 합니다.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을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정욕에 빠져 있는 가를 알아야 하는데 성령이 오시지 않아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는 이 세상의 종교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불교와 기독교가 뭐가 다릅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 그 말 한 마디 빼고는 똑같습니다.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도덕적으로 살라고 가르치고 있고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설교를 들어 보아도 도덕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기독교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목사가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자기 부부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부부는 이제까지 한 번도 부부 싸움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자랑입니까?

 

설령 부부 싸움을 안 했어도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설교를 합니까? 다 자기 행위를 자랑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이미 그 목사는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목사의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자기도 그 목사와 같이 행위의 부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고 그런 것으로 자기가 믿음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목사가 그런 설교를 하면 자기도 모르게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행위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런 종교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굳게 서 있어야 주의 강림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1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9쪽)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오직 믿음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그것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단어에 집착을 하고 그렇게 말을 하는 것으로 마치 오직 예수를 믿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는 너무 지적인 수준이 높다 보니까 성경을 아무나 보고 있고 그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보면서 예수를 믿으려 하고 있습니다.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의 강림이 가깝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가깝다고 하는 표현을 우리 인생들의 생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은 성도는 그 마음을 굳게 세울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 강의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바로 깨닫는 성도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굳게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식물로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는 이성적 성경지식으로 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라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신학박사가 되려고 노력을 하기 보다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들이 어떻게 박사학위를 받습니까?

이번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교회에서 목사의 박사학위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학박사도 거짓으로 받는 그들이 과연 성경을 바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박사는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유혹을 받은 적이 있고 아주 쉽게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묵사만 식물로 합니까?

교인들도 지적인 수준이 있다 보니까 성경을 그저 문자적으로 많이 알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그런 지식을 가지고 오히려 은혜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왜 식물로 하지 말고 은혜로 하라고 말씀을 하느냐면 식물로 하면 은혜를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편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식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다 알고 있다고 해도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도는 그런 식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하여 이 세상에서 무명한 자 같아도 주의 강림을 기다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35:25 로마서강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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