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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강해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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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10-30 20:36 조회 : 505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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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5:1절을 보겠습니다. (신 375쪽)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선을 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선을 행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자기가 육체적으로 선을 행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영의 일이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육체적으로 하는 것은 모두가 악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가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선이라는 것이 율법이 되어서도 안 되고 또 성화가 되려고 해서도 안 되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서만 용납이 됩니다. 그럴지라도 그 선이라는 것은 악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선을 행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너무도 잘하고 있지만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그 기초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을 행할 줄 알고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선을 행할 줄을 모르니까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종교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를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종교가 되어서 유대교와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사실 유대교나 기독교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교

천주교, 정교회,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수많은 종파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모두가 공통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은 다 율법주의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들은 선을 행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도바울이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육체를 위해서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교회들이 다 육체와 성령을 함께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 율법주의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를 위해 심고 있습니까?

어느 단 한 가지라도 육체를 위해 심고 있다면 그는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해도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분별하면서 천주교와 기독교가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데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는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 자랑하는 것이고 악한 일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거의 모든 종교가 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영지주의는 없습니다.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구원파를 영지주의라고 하는데 그것은 성경을 너무 모르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구원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율법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자기들이 지키는 것과 다릅니다.

다를 지라도 어느 한 가지라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다 율법주의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복음주의도 없고 영지주의도 없습니다. 오직 율법주의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자기들의 법에 따라 약간의 형태만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지 다 율법주의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어느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성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갈라디아에서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서냐 듣고 믿음으로냐고 묻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절대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을 하면서 성령을 받아서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선입니다. 마음으로 믿어지는 역사를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선을 행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기본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모르다 보니까 사람들은 넘치는 악을 행하는데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교회만 들어오면 됩니다.

그러면 사단은 그들을 죽이기가 너무도 쉽습니다. 사단이 미혹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스스로 넘치는 악을 행하고 선을 행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선을 행할 줄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넘치는 악을 행하면서 자기들이 예수를 아주 잘 믿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죄 입니다

무엇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 안에서 이 죄를 마음 놓고 지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물론 육체적은 죄를 짓게 해서 정죄에 빠지게도 하고 있지만 사실 교회 안에서는 악을 행하는 죄를 짓게 해서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부자들은 들으십시오.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부자들은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누구입니까? 이 세상에서 재물이 많은 사람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행하면서 그 악으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부자가 됩니다. 교회 안에 있는 그 부자들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부르짖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123쪽)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들아 들으라

왜 부자들에게 들으라고 말씀합니까?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진리에 대해서 듣지를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들으면 이렇게 까지 간곡하게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선지자들이 말씀을 전해도 듣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들으라

그들은 듣지를 않았습니다. 왜 듣지를 않았는가 하면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듣지를 않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율법을 지키고 있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상은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고보는 그들에게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들으라고 합니까?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생각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을 합니다. 자기들은 천국에 가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지옥의 고통 중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디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그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자가 누구입니까?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들에게 똑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자를 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부자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부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냥 세상에 있는 한 부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부자를 대표하는 한 부자입니다. 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옷이 무엇입니까?

구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인 이 부자는 자기 율법의 의로 옷을 입고 있습니다. 부자와 같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율법의 의가 좋은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입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 율법을 지켜도 입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라고 하니까 부자는 율법을 아주 잘 지켰고 거지는 율법을 못 지킨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율법에 가입을 한 그 사람의 신앙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율법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는 율법을 지켜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는 어떻습니까? 율법에 가입을 해서 자기 자신을 보니까 거지와 같습니다. 우리 인생 모두가 다 거지와 같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교회 안에서 성인과 같은 삶을 살았다 해도 율법에 가입을 하면 다 거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지입니다.

율법에 가입을 하고도 그것을 모른다면 그는 아직까지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에 가입을 하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으면 자기가 얼마나 거지인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누가 많습니까?

부자가 많습니까? 거지 나사로가 많습니까? 이제까지 표면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의 모든 교회는 다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기독교가 공인이 되기 시작을 하면서 교회 안에는 부자만 있었지 거지 나사로는 없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의롭고 선하게 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율법의 의로 그리고 성화의 모습으로 또 은사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부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잠언23:4절을 보겠습니다. (구 936쪽)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잠언은 우리에게 분명히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아니 부자가 되기 위해서 새벽 마다 나가서 기도를 하고 있고 기도원에 가서 밤을 세워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은사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화로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사망의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쓰지 말라고 말씀하니까 적당히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하고 있다고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는 순간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왜 되고 싶어 합니까?

그것은 성경을 바로 알지 않고 성경을 자기 사사로운 지혜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사로운 지혜고 그것으로 성경을 보는 순간 그는 반드시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자기도 그와 같이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 시대를 보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는 방법들을 가르치면서 부자가 되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은사를 기도를 해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또 율법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성화가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경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기를 애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부자가 되기를 애쓰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분량대로 은사와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복을 인정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분복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부자가 되려 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했습니까?

이스라엘이 부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한 부자와 같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자기들 스스로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졌다고 자랑했습니다. 그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애를 썼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입니다.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부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도 잘 지키고 또 성도로서 삶을 잘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가 마음 놓고 막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국가 사회 그리고 가정 또 종교가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육체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은 영의 일입니다. 그런 육체의 사사로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육체를 가지고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아직 이 세상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야고보서의 강해를 본 사람은 이해가 됩니다. 왜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순간 그가 받을 고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처음부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일부러 가난해 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가입을 하면 나는 부자가 될 수 없고 자기가 얼마나 거지같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율법에 가입을 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 실제 그 율법을 자기가 얼마나 범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사로운 지혜가 있어서 그것을 버리지 못해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너무도 좋게 생각이 되기 때문에 그 부자가 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부자가 되려하고 있습니다.

 

누가 옳습니까?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옳습니까? 부자가 안 되려고 하는 사람이 옳습니까? 이 세상의 지혜로는 부자가 되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부자가 되는 것이 옳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면 다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사람을 가르쳐 보았습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을 도무지 깨닫지 못 합니다. 그 사람이 이것을 이해하기 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그가 저를 완전히 신뢰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아마도 많은 설교를 들어야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편지 설교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주 극소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설령 이해를 하더라도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없습니다. 부자가 되기 싫어도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아니 부자가 안 되려고 하다가는 더 이상 그 교회를 다니지 못하니까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예수를 잘 알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사사로운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서 부자가 안 되고 있습니까?

그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나는 부자가 아니라 가난하다고 하면 그것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기가 너무 가난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누가 인정을 합니까? 그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부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상 그는 세상 사람에 비해서 부자입니다.

 

잠언28:11절을 보겠습니다. (구 943쪽)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겨도 명철한 가난한 자는 그를 살펴 아느니라"

 

부자가 많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지만 이제까지 2000년 동안 거의 모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잠언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보았던 말씀입니다. 그들 역시 부자가 되어 있었고 그들은 자기를 지혜롭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혜롭다 생각합니까?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지혜롭다 합니까? 율법을 잘 지키기 못하는 사람이 지혜롭다 합니까? 이것은 말하나 마나입니다. 부자들은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모르고 더욱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자기가 지혜롭다 생각이 되기 때문에 부자가 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성경공부교제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지금 나와 있는 거의 모든 교제는 다 부자를 만들고 있는 교제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공부교제가 다 부자를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가 그 교제를 배운 것으로 마치 지혜롭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인 교회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성경공부교제를 배워야 지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분도 그 공부를 해야 줍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더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종교인을 만들고 있는 그 교제를 배우고 나서 교회 안에서 그 교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기를 보면서 얼마나 지혜롭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사실은 부자가 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입고 있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얼마나 지혜롭다고 생각을 했습니까? 자기들이 지혜롭게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니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지혜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을 보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얼마나 초보적인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가 그런 지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기독교보다도 더 지혜 있게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보입니다.

자기 육체를 부자로 만들고 있는 지혜는 초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그들이 이 세상 초보와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 합니다.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임할 고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초보에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체가 초보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다릅니까? 교회도 율법을 지키고 이 세상 모든 종교도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 비밀을 모르면 평생 주여 주여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이 세상 종교에 빠져 열심을 내다가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19:23-24절을 보겠습니다. (신 32쪽)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부자 청년이 예수님 앞에 왔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느냐고 묻고 그대로 행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물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이 대답을 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하고 또 무엇이 부족한가를 묻고 있습니다.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하나님을 너무 잘 믿고 싶어서 어려서부터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왔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영생을 위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율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나이다 이 청년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습니까? 잠언에서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육적으로도 부자가 되었고 또 율법으로도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은 정말 자기 마음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은 자기가 부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지킨 것이지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앞에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부자가 재물이 많은 고로 심히 고민하며 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재물이 많아서 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재물 이 청년이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부자가 되는 것을 싫어합니까? 예배도 잘 드리고 또 율법도 잘 지키고 자기를 통해서 아름다운 은사도 나타나고 또 성도로서 교회 안에서 모범을 보이고 하는 것을 누구나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부자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부자입니다.

예배도 부자로 만듭니다. 성경의 문자적 지식도 부자로 만듭니다. 찬양도 부자로 만듭니다. 기도도 부자로 만듭니다. 헌금을 하는 것도 부자로 만듭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다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행위입니다. 사람의 육체로 하는 모든 것은 다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부자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어려운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느 정도 어려운가 하면 부자가 되는 순간 그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부자가 되는 순간 그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음부의 고통 중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재물의 부자가 아닙니다.

그런 부자는 얼마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은사로 성화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니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도 역시 들으라 부한 자들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도 부자들은 안 들었습니다. 역시 이 시대도 부자들아 들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 야고보서 강해를 보면 오히려 반발을 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자기들이 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모든 의가 부자라고 하면 받아들이지를 못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의 한 모양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라는 율법을 지키면 그것을 안 지키는 사람에 비해서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애써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부자 청년을 통해서 가르쳐 주시고 있지만 이 부자를 이 세상의 재물이 많은 부자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 자기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할 것입니다.

 

누가복음19:2절을 보겠습니다. (신 128쪽)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삭개오도 부자입니다.

마태복음의 부자 청년도 부자고 삭개오도 부자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부자 청년은 율법의 의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삭개오는 진짜 재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더 의롭습니까? 마태복음의 부자 청년과 삭개오는 비교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성입니다.

그는 정말 신앙적으로 신실하게 산 사람입니다, 율법도 잘 지키고 어려서부터 고아와 과부도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삭개오는 율법도 안 지켰습니다. 그리고 로마 식민지로 있는 자기 백성들의 고혈을 빼서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는 두 부자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려워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부자인 삭개오를 보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물의 부자는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부자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려워서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 했습니다. 이 세상의 이성으로는 성경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말 선하고 의롭게 산 부자 청년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을 고통을 잠시 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삭개오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하지만 성경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다 같은 부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자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부자 청년과 한 부자를 비유로 해서 그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연락을 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부자가 되지 말라 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부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회는 없습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이단이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이성으로는 분명히 부자가 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부자가 되지 말라고 해도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부자가 되려고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있고 그것을 하나 입으면 자기가 마치 성도나 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쉽습니까?

사실 사단이 일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고 하나님께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단이 그것을 들어 주기만 하면 사람들을 아주 쉽게 사망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게 해 주고 십일조를 내게 해 주고 은혜가 넘치는 찬양을 듣고 부르게 해 주고 기도를 하게 해 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부자가 됩니다.

 

재물의 부자는 되십시오.

하나님께서 분복으로 주셨다면 그것을 이 세상사는 동안에 누리고 또 복음을 위해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율법의 부자는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기 영혼을 망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삭개오는 구원을 받았어도 부자 청년과 누가복음에 비유로 말씀을 하신 한 부자는 구원을 받지 못 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3: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2쪽)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이 시대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보고도 자기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 말로 부자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성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 중에 성도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부자라

나는 성도라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라 그래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자기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이미 천국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행위를 보면 너무도 부자가 되어 있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자기를 모르고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이 시대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까?

정말 성도가 맞습니까? 이스라엘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고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는 그들은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으로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성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성도라고 하는가 하면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그것을 안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모릅니다.

죽을 때가 되어도 모릅니다. 평생을 신앙생활하면서 주여 주여 하고 있고 성경을 읽으면서 진리를 알고자 하지만 모릅니다. 사실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다 부자가 되어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유대교가 되어서 종교가 되었고 초대 교회를 지나오면서 천주교가 되어서 종교가 되었고 종교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기독교가 탄생이 되었지만 역시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라고 강요를 했습니다. 지금 역시 모든 교회가 다 부자가 되라고 하고 있고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 정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자기들이 정통입니다. 또 천주교는 자기들이 정통입니다. 기독교는 자기들이 정통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서로 인정을 하고 있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는 정통입니다. 그리고 안식일 교회는 스스로 자기들이 정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자기들이 만든 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교회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정통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통이라는 것이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단에 다니는 사람과 정통이라고 하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누가 부자가 되겠습니까?

이렇게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다 부자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으로 부자가 되고 은사로 부자가 되고 성화로 부자가 되고 지식으로 부자가 되고 겸손의 모양으로 부자가 되고 수도 없이 많은 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본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한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셨을 때 자기들에게 임한 고통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서 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부자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 됩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의 없는 것을 가졌습니다.

그러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 교회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부자가 되고 있고 기독교인들은 주일이라는 날과 자기들이 예배를 드리는 여러 가지 형식으로 부자가 되고 있고 천주교인들은 자기들이 섬기는 여러 가지 예배의 모양을 보고 부자가 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의 모양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고 있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노래를 잘 못 부릅니다. 그러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에 비해 어떻겠습니까? 돈이 많은 것으로는 부자가 되겠지만 노래를 못 부르는 것으로는 가난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비록 돈이 없더라도 자기 노래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 한 가지가 자기를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릅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사람은 절대 모릅니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합니다. 교회 안에서 단 한 가지라도 부자가 되어 있으면 이렇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시대는 다 부자가 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35:25 로마서강해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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