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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지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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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01-17 22:40 조회 : 920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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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성막 지붕

 

출애굽기26:1절을 보겠습니다. (구 121쪽)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성막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본 식양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지은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주신 그대로 지었습니다. 이제까지 성막에 대해서 그 식양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성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경륜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성막을 보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을 보고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모형과 그림자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성막을 짓고 또 솔로몬으로부터 해서 3번의 성전을 지었지만 이제 그것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없애셨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그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거기서 더 진보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를 보았으면 거기서 하늘의 일에 대해서 지혜를 구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저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있는 성막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런 행위들로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 백성은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하는 그들이 은혜를 받으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교회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어떻게 구원을 해 주시고 있는 가를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생명을 얻은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얻으면 뭐합니까?

그 생명이 다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성도들이 담대함으로 이제 휘장을 지나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을 주님께서 어떻게 보호해 주시고 있는가를 성막의 지붕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가 있습니다. 이 성소에는 성소와 지성소로 분리되어 있고 그 가운데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성막을 이제까지 배워서 우리가 알겠지만 성막 문으로 들어온 백성은 죄인입니다 그 죄인이 자기를 대속할 제물을 가지고와서 번제단에서 번제로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이 거기까지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얼마만큼을 대속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습니다. 이 세상 죄는 아담이 범죄를 한 것으로부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씻습니다.

물론 이것은 일반 백성이 씻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대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람들이 알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십자가에서 죄를 대속을 했다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있지만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물두멍에서 씻지를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리서10: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믿어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내가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아무리 안다 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두멍에서 씻은 사람만이 성소로 들어갈 수 있고 성소에서 생명을 얻은 성도만이 담대함을 얻어 하나님이 계신 보좌 앞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알면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알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절에 있는 스님들도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을 많게는 수십 번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이 세상 종교의 학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무슨 말씀이 있는가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설교들을 듣고 또 성경을 읽다 보니까 성경에 웬만한 말씀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목사인 저보다도 성경 구절을 척척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믿는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아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는 것은 문자적으로 아는 것이지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진리를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지고 가셨다는 것을 알면 뭐합니까? 자기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도 모른다면 그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아는데서 생깁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 아는 것과 진리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아는 것으로 마치 진리를 아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는 사람은 아직까지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알면 뭐합니까?

자기의 죄를 모르면 그 십자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죄도 모르면서 십자가를 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 또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죄도 모르고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을 보고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르다 보니까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는데 하도 많이 배워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자기 죄를 모르다 보니까 믿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지지가 않는 사람은 아직 물두멍에서 씻지를 못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종교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호해 주시겠습니까?

믿음이 있는 성도들을 보호해 주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을 보호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믿음이 있는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보호를 받으려면 이제 성도는 담력을 얻어서 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성소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사람들은 그저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육의 보호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들어가야 우리의 생명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소와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전체를 성소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사람은 그 안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만이 성소에서 휘장을 지나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소를 덮고 있는 것이 바로 성막의 지붕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성소 안 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이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지 성소 밖에 있는 사람은 절대로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막에서는 우리가 벌써 지성소에 들어갔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5-6절을 보겠습니다. (신 311쪽)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허물로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은 것으로 치는 것입니다 아니 육체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육체는 살아 있어서 이것이 실감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누가 삽니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생명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는 우리가 성막을 통해서 배웠듯이 이제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에서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는 이미 지성소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함께 앉았습니다.

이것은 영의 일입니다 우리가 아직 영의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믿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있는 성도가 하늘의 참 장막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성도를 주님께서 끝까지 보호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성도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진설병 상과 등대와 분향단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십자가를 보고 있다 해도 생명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보고 있습니다. 물로 씻고 성소에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를 않고 있습니다.

 

아니 믿음 자체가 없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성막에 들어와서 십자가를 보았으면 뭐합니까? 아직 믿음이 없어서 성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는 생명이 없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은 아직 성막에 있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성소로 들어가야 합니다.

 

히브리서에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는 성도라면 그런 담력을 얻어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담력을 얻지 못해서 성소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어서 자기가 들어간 것 같아도 실제로는 담력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면서도 담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미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성막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담력을 얻어 성소로 들어가서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을 따라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생명이 있다고 확신을 하는 성도는 담력을 얻어 이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보고 있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얼마나 오묘하고 깊은 하나님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제가 깎아 내리고자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어야 하지만 믿지를 않고 있기 때문에 성소에 들어가지를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소에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얻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 성소와 지성소를 덮고 있는 것이 성막의 지붕입니다. 이 지붕 안으로 들어온 성도는 생명이 있는 성도고 하늘에 함께 앉아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32:7절을 보겠습니다. (구 824쪽)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셀라)”

 

주는 나의 피난처이십니다.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피난처가 어딘가 하면 바로 성소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피난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소입니다.

이 성막 전체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성소가 우리의 은신처가 되고 있고 그 성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보호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막은 없어졌습니다.

아니 이스라엘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막이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지금도 이 성막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일을 우리가 믿음으로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보고 있는 성도들은 믿음으로 이 성소 안으로 들어가 있고 담력을 얻어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로 들어갔습니다.

 

내 육체가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모형을 보고 우리의 영혼이 새롭고 산 길로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그 장막 안을 덮고 있는 것이 지붕입니다. 이 지붕은 우리를 지켜 주고 또 우리를 은밀한 곳에 숨겨 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밀한 곳에 숨겨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장막 안에는 사단이 더 이상 들어올 수 없는 곳입니다.

 

사단은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영의 일을 믿음으로 그 하늘에 다시 들어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은밀한 곳에 우리를 숨겨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지붕으로 숨겨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장막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숨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나를 재난에서 지켜 주실 분! 주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나는 소리 높여 주님의 구원을 노래하렵니다.(셀라)“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죽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도 보호를 받지 않으면 역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영의 일에 대해서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말씀 그대로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로서 난 영을 주님께서 이렇게 보호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영의 말씀입니다

실제 다윗은 육을 보호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시는 자기 영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가 되고 나를 지켜 주시는 분이라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도 나이가 들어서 그 육체는 결국에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을 보고 육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영을 생각하는 성도가 지혜롭습니다.

 

요한일서5:18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악마가 그를 해치지 못합니다”

 

사단이 그를 해치지 못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로서 났다고 요한복음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악마가 해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의 비밀입니다 어떻게 지켜주시고 있는가 하면 장막 은밀한 곳에 숨겨 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육체는 마음대로 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은 사단이 만지지도 못하게 은밀한 곳에 주님께서 숨겨 주시고 있습니다. 이 영의 신비한 일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계신 보좌 앞에 있기 때문에 사단이 거기까지는 들어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 영의 일을 제가 설명을 할 수 있는 한계입니다 성막 지붕을 통해서 우리는 이 영의 일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육체는 마음대로 만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성도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죽을 때까지 죄를 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로서 난 영은 주님께서 은밀한 곳에 숨겨 주시고 있고 초막의 비밀한 곳에서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 영을 만지지도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소 안으로 들어가 있는 성도는 주님께서 지붕으로 은밀히 감추시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 안에는 들어오지를 못해서 만지지도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의 일은 저도 말씀을 드리는 것이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로서 난 우리가 또 다시 이 세상에 노출이 된다면 사단은 그 영도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일은 영의 일입니다.

이 성막 자체가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한가를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막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보여 주시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것을 자기들의 손으로 짓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시대 역시 사람들은 이 성막에 대한 말씀을 보고 있지만 그것을 육의 눈으로 보다보니까 전혀 이해가 안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갔습니다.

성소에서 휘장 사이로 난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들어갔습니다. 우리 육체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로서 난 새 생명이 믿음으로 들어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들어가 있는 성도를 주님께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지켜 주시고 있습니다. 초막의 비밀한 곳에 지켜 주시고 있고 장막의 은밀한 곳에 숨겨 주시고 있습니다.

 

안 믿습니다.

아니 성막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기구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아직까지 성막의 뜰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을 하시고 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어떻게 지켜 주시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게 숨겨 주시고 있는 가를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육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성도는 이제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성경을 보면서도 육에 머물러 있습니다. 영의 비밀한 일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 시대 교인들은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는 들어가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들어가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성막 지붕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의미하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를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출애굽기26:14절을 보겠습니다. (구 122쪽)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

 

성막의 지붕은 내 겹으로 쌓여 있습니다.

우리가 겉에서 보았을 때 보이는 것은 해달의 가죽입니다.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 덮게를 만들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달의 가죽으로 성경에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16장10절에서는 똑같은 단어로 물돼지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돼지가 맞는 가 해달이 맞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이 시대에 정확하게 규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해달이라고 한다 해도 그렇고 물돼지라고 한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물돼지는 돌고래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해공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가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기 때문에 저도 딱히 어느 것이 맞는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있습니다.

이것으로 신을 만들어서 신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에스겔에서 분명히 이 가죽으로 여인들의 신을 만들어서 신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광야로 나왔을 때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좋은 것을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애굽의 집에서 자기들이 필요한 것을 다 가지고 왔습니다. 아마도 이 해달의 가죽은 그들이 광야로 나가면서 가죽신을 신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애굽에서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습니다.

누구나 돈이 있으면 신을 사 신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도 자기가 좋다고 해서 아무나 신을 신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은 분명히 계급의 상징과도 같았고 가죽신은 일반 평민이 신을 수 없는 신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는 지붕입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해달의 가죽은 검습니다. 그리고 이 가죽으로 덮은 것은 성소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막의 기후에서 성소 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가죽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추위와 비바람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 털은 까만색입니다

해달의 가죽은 모든 것을 차단해 줌으로서 성막 안에 있는 사람에게 추위 더위 비바람이 오지 않음으로 아무런 해가 오지를 않습니다. 성막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막아 줌으로 아무런 해가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해를 막아 줍니다. 죽음과 고통과 질병과 모든 해를 막아 줍니다. 그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네 겹의 덮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밖에 있는 사람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해달의 가죽입니다. 다른 덮개들은 그 안에 덮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어진 덮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이 해달의 가죽만 보이고 있습니다.

 

그 안을 볼 수 없습니다.

육적으로는 비바람을 막아주고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고 있지만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어서 성막 안을 사람들이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해달의 가죽이라는 것은 검은 색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보아도 별로 눈길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신으로 만들어 신을 정도로 가죽이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11:9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습니다.

해달의 가죽은 성소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 온다 해도 이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어서 상함이나 해함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우리를 덮어 줌으로 해서 성소 안에서는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단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죽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가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를 하고 있고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면서도 아직까지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단에게 붙들려서 자기들이 얼마나 상하고 있고 해를 입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식이 있으면 자기들이 사단의 미혹으로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데 지식이 없어서 상함을 입고 해를 입고 있습니다. 해달의 가죽은 육적으로는 이 세상의 비바람과 태양과 추위를 막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적으로 상함을 입고 해함을 입는 것에서 막아주는 것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모르면 결국 사단에게 붙잡혀서 상함을 입고 해를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았다면 그렇게 마귀의 자식들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고 있습니다. 아니 주님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 지식이 우리를 상함과 해됨에서 보호를 해 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막을 보고도 도무지 깨닫지를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해야 합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보면 뭐합니까? 솔직히 이 시대 사람들을 보면 지적으로는 뛰어날지 몰라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해달의 가죽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져서 상함도 없고 해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밖에서 아무리 성막을 바라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덮어 주시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하늘의 참 장막에 들어가는 것을 예표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그렇게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 져서 상함도 없고 해됨도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 안에 있는 성도만이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성막 전체의 모든 기구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막을 보고 성소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성도만이 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 생명을 주님께서 보호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53: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33쪽)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왜 우리가 상함을 없고 해됨이 없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찔림을 받았고 그가 우리를 위해 상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달의 가죽은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덮어 주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해달의 가죽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상함과 해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가 찔림을 당하셨고 그가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렇게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막아 주시고 있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을 막아 주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상함도 없고 해됨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다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해달의 가죽과 같이 상함을 입고 채찍으로 맞으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아는 지식이 충만해야 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알려고 하기 보다는 이스라엘과 같이 성막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과 같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한 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사단에게서 보호할 수 있는 분이 없다는 것을 해달의 가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은혜를 모르고 은혜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 안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말로는 예수 안이라고 하지만 실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교회 안에 있는 자기 모습을 보고 예수 안에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늘 말씀을 드리지만 교회는 방주가 아니라 광야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이 성막을 자기들의 손으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영의 일을 육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일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를 않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사망이 이르렀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성막을 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는 지식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성막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시대도 믿음이 없어 교회 안에서 이스라엘과 같이 행위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입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지붕의 겉은 해달의 가죽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해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해를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해를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28:25 아카데미 강의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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