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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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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5 15:09 조회 : 1,252회 댓글 : 1건

본문

히브리서9:7절을 보겠습니다. (신 361쪽)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것이라”

 

대제사장은 일 년 일 차례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가셔서 대제사장으로 지성소에 들어 가셨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피 없이는 못 들어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피 없이는 못 들어가느냐면 지성소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피 값을 주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무엇을 하러 들어갑니까?

성소에서는 매일 제사를 드리지만 지성소에는 일 년 한차례 대제사장이 들어갑니다. 들어 갈 때는 성소에 있는 번제단의 모든 피와 새 양을 잡은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법궤 앞에서 쏟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제사를 드릴 때 대제사장이 했던 일입니다

 

그러면서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대제사장이 법궤 앞에서 피를 쏟으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받으 십니다. 제사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순간에 제사 드리는 백성들의 죄가 한꺼번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지난번 속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스라엘의 모든 죄가 한꺼번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의 죄가 백성들의 노력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제사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죄를 안 지으려고 선해지려고 노력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의 제사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 속죄에 대해서 모르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속죄를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깨끗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율법으로 의로워 져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이 속죄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속죄를 받아서 깨끗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제사로 인하여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 피를 하나님께서 받으심으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제사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이 상막에서 제사를 드렸던 것은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을 보고 그렇게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로마서8:34절을 보겠습니다. (신 250쪽)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백성들의 죄는 대제사장의 제사가 끝이 날 때 그 제사로 인하여 백성들의 죄가 없어집니다. 이스라엘이 일 년 일 차례 대제사장이 휘장 안으로 들어가 속죄소에서 제사를 드린 것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를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늘의 참 장막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실체를 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의가 된다는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역사입니다

휘장에 피를 뿌리고 단에 피를 쏟습니다. 대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받으시면 성소안의 피가 깨끗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지성소에는 오직 깨끗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휘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셨다는 증거로 그 안에 뿌려졌던 피가 깨끗하게 없어집니다.

뿌려진 피는 백성들의 죄 입니다 제사가 받아들여지는 순간에 백성들의 죄는 없어진다는 상징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만든 장막에서 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히브리서의 말씀과 같이 하늘의 참 장막을 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고 죽을 때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휘장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없어 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짐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직까지 휘장이 그대로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누구도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육체로 그 휘장을 찢으심으로 우리가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어서 제사를 드림으로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지 내가 빌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내가 용서를 빌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자기가 용서를 빌어서 죄를 사함을 받을 수 있지만 성령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약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는 자기가 고백을 하는 회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해야 죄를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대제사장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간구를 하시기 때문에 속죄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셔도 안 되고 하늘에 올라 가셔서 참 장막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를 해 주셔야지 영적인 이스라엘인 성도들의 죄가 없어지고 깨끗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죄를 안 져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없어지는 것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요 라는 말씀은 하늘에 올라가셔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간구하심으로 내 죄가 없어지고 죄가 없어짐으로 해서 의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아스요. 하나는 야긴 입니다. 우편기둥에서는 대제사장을 기름 붓고 좌편 기둥에서는 왕을 기름 붓 습니다 실제 이스라엘의 성전에 이 두 기둥이 있어서 왕을 세울 때는 좌편에서 기름을 붓고 제사장을 세울 때는 우편에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율법의 행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의로워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나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로워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셔서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우리가 의로워 진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율법이 성행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의를 모르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들의 행위로 의로워 지려고 노력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더럽습니다.

 

이사야61:10절을 보겠습니다. (구 1043쪽)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 의의 겉옷으로 우리를 입혀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이 의의 겉옷을 모르면 구원의 감격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 옷이 어떤 옷인가를 아는 성도만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옷이 어떠하기에 구원의 옷, 의의 겉옷으로 입혀주시는 지를 보겠습니다.

 

이사야64:6걸을 보겠습니다. (구 1045쪽)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우리의 의의 옷은 다 더러운 옷 같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의는 어디에서 온 의입니까? 율법에서 온 의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려고 하는데 우리의 의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옷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자기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깨끗한 옷을 못 입었습니다.

 

이 의의 싸움입니다.

사실 진리는 우리의 의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의 의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지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이 싸움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사실 성령이 그 가운데 임재 하시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교회는 자기들의 더러운 의를 가지고 자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의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사람은 이미 이 싸움에서 지고 있는 사람이고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소리를 못 듣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그 더러운 옷 입고 어떻게 하나님께 가려고 하느냐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로워 질수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위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은데 하나님께서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입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입기를 거절을 하고 자기들의 행위로 깨끗한 옷을 입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본 모습은 검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보물로 단장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신부 화장을 하니까 예쁘게 보이는 것입니다 신부가 화장하는 것처럼 우리의 본래 모습은 더럽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예쁘게 단장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옷으로 우리를 입혀서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적으로 얻은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믿음의 옷입니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행한 의의 옷은 더러운 옷 같지만 이 옷을 입혀 주시면 깨끗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남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장 시켜가지고 예쁜 처녀라고 받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서는 나는 너의 남편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신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시는데 그냥 받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겉옷으로 내게 덧입히시며 신랑이 사모를 쓰고 신부가 자기보물로 단장한 것 같이 해서 우리를 받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의 보물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극히 귀한 진주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이사야59:9절을 보겠습니다. (구 1040쪽)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사람들의 행동은 공평도 없고 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공평도 없고 의도 없는 우리지만 하나님께서는 의의 겉옷을 입혀서 우리를 깨끗한 것으로 받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의 겉옷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실제 우리가 입는 옷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혼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공평과 의 또한 자기들의 기준에 맞추어 놓은 것 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 아프리카 사람과 미국 사람과의 공평과 의는 많은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의와 공평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사야1:27절을 보겠습니다. (구 969쪽)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의로 구속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는 우리의 육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이 이렇게 의로 구속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육체는 더럽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육체도 더럽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우리 속에 새롭게 탄생이 되는 영은 깨끗합니다. 그것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아담에게서 하와가 탄생된 것 같이 하와는 아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탄생이 된다는 말씀은 우리 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과 육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아담으로 탄생된 우리 육체는 어떻게 해도 더럽습니다. 이 육체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안 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두 번째 아담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새로운 하와를 탄생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된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 만큼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비밀입니다

그러나 이 비밀을 모르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 육체를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이 영의 비밀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믿어집니까? 그러나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이 책망의 소리를 받아들이고 믿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기초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많은 것을 안다고 해도 성령께서 책망하시는 이 말씀이 믿어지지가 않으면 그것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론이 왜 중요하느냐면 이 세상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이것이 믿어져야 합니다.

 

이사야32:17절을 보겠습니다. (구 1005쪽)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우리는 의가 없기 때문에 영원한 평강과 안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적인 의로는 영원한 평안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무리 율법적으로 깨끗하게 산 사람이라도 늘 그 마음에서는 정죄를 받고 있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사실 율법주의 마음에는 늘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안전이 있습니까?

우리가 율법적으로 아무리 의롭게 산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는 안전이 보장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은 율법적인 의로는 안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의는 하나님께서 입혀 주시는 의기 때문에 그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강과 안전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으로 우리 죄가 속죄를 받고 우리 속에 깨끗한 영이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은 깨끗하기 때문에 평강이 오고 또 사망에서 안전합니다.

 

절대 죽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영이 죽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예수님이 죽으면 내 안에 탄생된 영도 죽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럴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의입니다 이 의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의를 누가 이 세상의 지식으로 받아드리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의 의로는 전혀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로만 천국 갈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심으로 천국 가는 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이 이스라엘의 성막이고 제사법입니다

 

대제사장이 되어서 기도하신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가룟유다가 있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가룟유다도 배반하고 베드로도 배반 했습니다 그 후에 가룟유다는 자살해서 죽고 베드로는 돌아와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3번 부인할 것이요 사단이 너를 밀 까부르듯이 넘어뜨리려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 사람 다 뉘우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사람은 그를 위하여 기도 해주시고 한사람은 기도를 안 해 주었습니다. 기도를 해준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안 해준 가룟유다는 영원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 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우리는 베드로와 같이 일으킴을 당하여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설령 주님을 부인하는 일을 했다 할지라도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의 간증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4:4절을 보겠습니다. (신 267쪽)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자기를 책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깨끗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이 자기는 자책할 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판단 할 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 합니다 주님만이 판단하실 것입니다 내가 자책할 것이 없지만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빌립보서3:9절을 보겠습니다. (신 321쪽)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두 가지 의를 말씀합니다.

하나는 율법에서 난의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의입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 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역시 사도바울과 같이 이 의를 가져야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 말고는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이 우리의 의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를 주장하면 성령을 통해서 책망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가지고 계신 생각과 일치 되어야 성령께서 거하실수 있습니다. 성령을 거슬러서 생각한다면 성령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성령께서 같이 거하실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책망을 하시는데도 받아들이지를 않으면 성령이 함께 거하실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말씀하시는 의는 율법적인 의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셔서 죄가 없어지는 의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하고 있는 의를 성령은 책망을 하시고 진짜 의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3:6절을 보겠습니다. (신 288쪽)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의문은 죽이는 것입니다

의문은 율법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은 살리는 것이라는 말씀은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문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자체가 스스로를 죽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3:7-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88쪽)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으로서는 의를 얻을 수 없고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늘 말씀을 드리지만 율법의 기능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살리는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율법을 버릴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3: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합니다.

율법으로는 왜 의롭게 되지를 못하느냐면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아직까지 한 사람도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없습니다.

 

히브리서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가 의를 얻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몸을 드린 것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이 거룩함은 내가 무엇을 잘 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3:23-24절을 보겠습니다. (신234쪽)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값없이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된 것입니다

값없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에서는 매일 제사를 드리지만 지성소는 1년에 한번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 이십니다 매일 매일 회개 하면서 율법에 따라 죄를 회개 하는 사람은 아직 지성소에 들어오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매일 매일 잘해서 회개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제사 한번으로 우리는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어야 하는데 매일 매일 성화되어서 얻어진다고 하는 사람은 성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 합니다 그 사람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만들어 질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쫒아 가면 나머지 내 문제는 자연히 나도 모르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이렇게 하라 하는 하나님이 성도에게 요구 하시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것을 너무 주장하다 보면 본질이 가려진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입니다

모든 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가를 제하시고 정한 관을 씌우시고 의의 옷을 입히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율법적으로 안 되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천국으로 데려가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감사한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있어야 주장을 하지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주장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로서 이루려는 사람들에게서 그 옷을 벗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야하는 것이 이 복음을 받는 사람들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전까지 내가 의로워 지려고 나를 고치려고 그런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복음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만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연약한 것을 고치려고 노력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고 살다보면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은 자연적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고쳐 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다른 것은 안 해 주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 하기보다는 자기의 연약한 것을 고치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참된 의는 하나님께서 벗기시고 입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한 의가 참된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의를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성격 안 고쳐집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위해서 자제를 시켜주시고 고쳐주시면 가능하겠지요. 베드로는 자기 성격대로 사명 감당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쳐지는 것입니다 설령 안 고쳐지면 어떻습니까? 내 그런 연약함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 아닙니까?

 

그런 것 너무 애쓰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성격대로 연약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지 마시고 성격대로 연약함으로 복음 안에서 일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 진리의 기초가 잡히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깨달아 집니다. 성령께서 내안에 계심으로 알게 해 주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의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심으로 우리 죄가 제하여지고 깨끗한 의의 옷이 입혀지는 것이 성도의 의입니다

 

이 복음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주님 오실 날까지 이 복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질수 있도록 더욱 헌신하시는 삶이 되셔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서 하늘에서 더 큰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28:25 아카데미 강의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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