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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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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5 15:04 조회 : 1,358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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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대하여

 

요한복음16:7-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 지 못함이요”

 

지난주에는 죄에 대하여를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살아나셔서 승천하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가르쳐 책망을 하느냐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알고 있다면 굳이 성령이 오셔서 세상에 대해 책망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기초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론의 가장 기초가 되는 죄에 대해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에 대해서 바르게 서 있지를 못하면 성경 전체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초는 성령론에 있어서 너무도 중요하고 또 성경을 보는 시각을 이 기초에 두고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성경을 보려고 하다가는 망하는 길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지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반 도덕적인 상식은 같을지라도 진리에 있어서만은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진리에 있어서만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육의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상을 가지고 보려고 한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과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고 괴리감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못 믿는다고 탓할 수 없습니다.

사실 교회에 나온 사람들도 믿지를 못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못 믿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죄를 용서를 빌지도 않았는데 용서가 된다는 것이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것을 이해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 교회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아직도 세상의 지식을 그대로 자기 사상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이 세상의 사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죄 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이 죄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고 또 마음에서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세상의 지식이 그대로 있어 거기서 벗어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지식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한번 쯤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은 패러다임이 있어야 아! 이것이 진리 구나 하면서 그마나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왔지만 그런 경험이 없이 그저 이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육은 이차원입니다

그러나 영은 사실 우리가 몇 차원이 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을 통해서 아주 조금 그것도 겨우 구원에 대해서 약간의 이해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인생들이 너무 쉽게 성경을 보려고 하고 있고 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왜 오십니까?

만약 세상의 지식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성령은 절대로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 세상적인 지식으로 충분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지혜를 깨달아 알 수 있는데 굳이 성령이 오셔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성령이 오셔서 세상에서 잘못 알고 있는 영의 일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셔야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충돌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성령이 가르쳐 주고 있는 진리는 서로 충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책망을 하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좋은 말로 책망을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공격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공격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법을 어기면 죄라고 말하고 법을 잘 지키면 의라고 말 합니다

또한 법을 못 지켜 죄를 지면 심판을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보혜사가 오셔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을 그대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책망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죄에 대하여 지난주에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요한복음16장8절에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 다는 말씀은 너희가 잘못알고 있으니 바로 잡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죄에 대하여 세상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법을 어기면 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성령께서 오셔서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가르쳐 주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상의 지식이 아닙니다.

죄냐 의냐 심판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옥 갈 죄냐 천국 갈 의냐 또한 천국가지 못해 심판을 받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 말씀들은 구원에 관한 문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죄는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기초에서 흔들리면 그는 성령이 아직 임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어도 무방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쳐 주시는 가장 기초적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정의를 내려 주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거나 그것이 흔들려 버리면 그 사람은 죄에 대해여 모르는 사람이요 또 성령이 그 안에 임재하지 않는 사람이요 아직도 세상 지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세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행위에 대한 문제는 조금 흔들려도 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거짓말 하지 말라는 말씀을 거짓말해도 된다고 말해도 사실 구원을 받는데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을 흔들어 버리는 순간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 의는 무엇입니까?

세상적인 기준의 의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렇게 의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2:13절을 보겠습니다. (신 241쪽)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서 다 그것이 진리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사실은 진리와 반대가 되는 말씀들도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러냐면 진리를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복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보면 사실 성도들이 당황스럽습니다. 이제 까지 복음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맞고 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로마서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주 고역적인 말씀입니다

내가 강하게 복음을 전하다가도 이런 말씀을 보면 또 상대가 이런 말씀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하면 할 말이 없어집니다. 사실 성경에는 이런 반대 되는 말씀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진리에 반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복음을 전하면 공격을 받습니다.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천국을 갈수 있다고 전하는 사람들에게 듣기만 하는 것이 의인이 아니고 행해야 의인이라고 공격을 합니다. 사실 이 말씀 그대로 라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말씀이 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3: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쪽)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2장에서 율법에 대해 말씀하고 3장에 그 결론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입을 막고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가져오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율법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입을 막고 대답하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복음에 반대가 되는 말씀이 사실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잘못 보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복음에 반대가 되는 말씀이 있다면 그것을 그 말씀만 보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왜 이런 말씀을 기록했는가를 성경 전체를 보면서 그 말씀을 복음에 위배되지 않게 해석을 해야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는 성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2장13절에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행하는 자라야 의인이라고 말씀하면서 3장20절에는 율법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연결된 말씀으로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행하는 자라야 의인인 것은 맞는데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2장13절의 말씀은 분명히 맞지만 그러나 율법으로는 이 세상에서 아직 한 사람도 의롭다 함을 받은 육체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율법으로 행해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로마서 2장13절의 말씀은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온전하게 흠도 점도 없이 행한 사람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 말씀이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런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함을 받으라고 하는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무엇입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입니다 사실은 성경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사상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 교회 안에서 그런 사상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자기가 율법을 지켜야 의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부처의 사상을 믿고 따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분명히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맞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도덕법을 어기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손가락질을 받을 것을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상식으로는 맞지만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과는 대치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어야 진리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2장16절에서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로마서 3장20절과 똑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말씀이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하셨는데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으로 의로워 질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 교회 안에 있는 다수는 율법으로 의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정의를 하고 있는데도 이 세상 사람들의 사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 율법으로 의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5:4절을 보겠습니다. (신 307쪽)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으로 의로워 질 수 있습니까?

성경의 정의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다수의 교인들이 이 율법을 지키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령론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가 율법을 잘 지킬 수 있습니까? 성령이 오셔서 도와주시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습니까?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성령이 감동을 해 주시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경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그럴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순간에 나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내 육체에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나타내고자 그것이 의로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다수의 사람들은 성령을 받으면 성령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을 자기들이 상상해서 만들어 가지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율법을 잘 지키게 도와 주셔서 의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을 너무 막연하게 생각을 하고 성령에 대해서 모르다 보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고 목사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면 그것을 듣는 교인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성경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그런 생각 자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라고요?

제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어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어디에 구원받은 성도가 율법을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 합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말 합니까? 사실 그런 생각이 이 세상의 사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부처가 된다는 뜻입니다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자체가 부처가 되겠다고 하는 것임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너희는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정말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율법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제도와 법에 의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제도와 법에는 이미 성경에 있는 도덕법이 다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율법을 주장합니까?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것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이고 또 하나는 도덕적인 법을 이용을 해서 다른 자기들에게 필요한 법을 살려서 자기들의 배를 채우려고 하고 또 교인들을 구속하게 위해서입니다. 사실 그것이 아니라면 법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종교인에 되는 순간 망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아세라가 그랬고 지금의 음녀가 바로 교인들을 종교인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세라에 미혹이 되었고 지금은 큰 음녀에게 미혹이 되어서 종교인이 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그 가운데 임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4:1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율법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내가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율법은 나를 의롭게 나타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십일조를 안 내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의롭습니다. 주일을 안 지키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분명히 의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마치 신기루와 같은 착시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가 지금은 분명히 내 눈에 의롭게 보이는 것은 뚜렷합니다. 사실 매주 놀러 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가 주일날 나와서 예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면서 십일조를 내는 것이 얼마나 대답합니까?

 

십일조입니다

누가 감히 그것을 낼 수 있다는 말 입니까? 사실 이 세상 사람들의 의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혹시 있을지 몰라도 자기의 수익의 십분의 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쓴다면 아마도 대단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의롭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못 얻으면 어떻게 됩니까? 율법이 있는 곳에서는 진노만 있을 뿐입니다 내가 의로워 지려고 한 그 율법의 행위가 신기루가 걷히고 나면 진노만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진노를 안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율법이 없어야 합니다. 내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고 남아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진노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은 성도라 하면서 성도는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자체가 진노를 받겠다고 자청하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에게서 율법의 한 모양이라도 있다면 버리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와 상관이 없는 아주 예쁜 여자가 있습니다. 이 두 여자가 있는데 누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 분노를 하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라 해도 다른 남자를 만나든 말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른 남자를 만나도 하나도 질투가 안 일어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면 어떻겠습니까? 그 남자는 아마도 질투를 하고 화가 나서 그 여자를 가만히 두지를 않을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바로 이렇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과 세상 사람의 차이입니다. 세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여자가 아무리 예쁘고 착해도 예수 그리스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자기가 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고 또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차라리 세상 여자가 낫지 교회 안에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만났다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노를 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는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그 행위가 바로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을 두 남편으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오직 진노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에는 나와서 정말 사람들로 부터는 의롭다 함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질투를 받아서 진노를 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율법 생각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습니까?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의에 대하여 가르쳐 주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시리라는 말씀은 세상 사람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워 질줄 알고 있다는 것이고 성경은 분명히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생각과 성령의 감동은 분명히 서로 대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로워 질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6:1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5쪽)

“의에 대하여 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참으로 이상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의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을 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보혜사 성령께서는 그것이 의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이 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이 의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런 의가 있느냐고 하면서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도 이런 말씀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냥 지나칩니다.

너무도 중요한 말씀인데도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사실 성령론에 있어서 이 기초를 모르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고 생각도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를 나와 수십 년을 신앙생활을 하면 뭐 합니까?

 

진리에 대해서 기초가 없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와서 도덕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마치 의로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이 사단이 사로잡고 있는 것인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진리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도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성령론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이 말씀을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은 조금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기초가 되는 말씀을 모르면 안 됩니다 너무 어려운 그리고 분명하지도 않은 예언 적인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마치 자기가 진리에 서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것도 바로 아는 것이 아닌데도 사단이 눈을 가려 버리면 그렇게 됩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올라가시는 것이 우리의 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기에는 깊은 성경의 진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의를 알아야 진짜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세상에 대해서 책망을 하시는 이 의에 대해서 모른다면 그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가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가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의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 지식으로는 황당하지만 어찌 되었든 성경에서 이것에 의라고 말씀을 하니까 우리는 이 의에 대해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 앞에 무엇 하러 가셨는지를 보겠습니다.

 

사도행전7:55절을 보겠습니다. (신 199쪽)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집사가 순교를 합니다.

마지막 설교 단 한 번의 설교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말씀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 설교를 하고 난 후에 이스라엘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합니다. 이때 사실 사도 바울로 곁에 서 있었고 스데반 집사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6: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58쪽)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서신 이유는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휘장은 저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성막론에서 이 휘장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지만 성경은 이 휘장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것이 바로 이 휘장입니다 이 휘장 안에는 아무나 들어가면 죽습니다. 반드시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론 성소 안에도 일반 백성이 들어갈 수 없지만 특히 이 휘장 안에서 반드시 대제사장만이 들어갑니다.

 

히브리서8: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60쪽)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가신 것이 의라고 하는 말씀은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면 대제사장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가셔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이 땅의 대 제사장은 누가 되었습니까?

이 세상은 율법을 쫒아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있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 반드시 하늘에 올라가셔야 하느냐면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은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성막은 하늘에 있는 것을 땅에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는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율법에는 레위 자손만 제사장을 세울 수 있는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가 없습니다. 레위 자파 자손 중에서도 아론의 자손이 대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왜 하늘에 올라 가셨는가를 조금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땅에서는 제사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늘에 올라 가셔서 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로 그리고 왕으로 또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고 지난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세상의 장막은 하늘에 있는 장막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 있는 장막을 표본으로 해서 이 세상에 있는 장막은 율법을 쫓아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세가 하늘의 있는 장막을 보고 그대로 성막을 이 세상에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 주시고 모세가 그것을 광야에서 그대로 세웠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을 표본으로 해서 세운 것이 땅에 있는 장막입니다

이 세상에 세운 장막은 몰론 하늘의 것을 보고 한 것이지만 사람이 세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사실 하늘에 있는 것을 보고 세운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성막을 만든 것은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의 그림자였습니다.

 

히브리서8:5절을 보겠습니다. (신 360쪽)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하늘에 있는 것을 모세에게 보여주고 그대로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진짜 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이 되셔서 들어 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형과 그림자를 보고 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를 보았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그림자를 실체로 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 했습니다

 

그림자입니다

성경은 그림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림자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더욱 율법주의에 빠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실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림자와 실체 사이에서 혼동을 하고 있습니다. 실체를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이스라엘과 같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예수를 본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가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같이 역시 이들도 예수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그림자로 보지 않고 자꾸 실체로 보다 보니까 성경을 잘못 해석을 해서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막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다 해도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대제사장이 들어가는 곳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는 첫째 칸이 아니라 둘째 칸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휘장을 사이에 두고 첫 째 칸은 성소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막에 대해서는 나중에 하나하나 기구들에 대해서 성막론 때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그리스도편지님에 의해 2015-03-11 16:28:25 아카데미 강의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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