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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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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21-04-07 13:36 조회 : 74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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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세기32:27-32절을 보면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우리 피조물의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해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지자들로 하여금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고 우리는 성경에서 그의 아들이 하신 일을 증거를 받아 믿어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인생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아니 교만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지혜와 지식이 있고 또 언어가 있다 보니까 마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것 같으면 성경은 우리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선지자가 그 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칭찬을 했습니까? 거의 모든 선지자들이 당시 사람들을 책망을 하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오히려 핍박을 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안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그들을 책망을 하는 말씀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선지자들을 핍박을 하고 죽인 이유는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믿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차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차이라고 하기 보다는 우리 피조물의 지식과 지혜로는 하나님의 생각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쉽게 말을 해서 피조물들은 옳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악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피조물들이 전혀 무슨 말씀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선과 악에 대해서 피조물들이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의 이성적 지식으로 아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괴리감 때문에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주님과 동문서답을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이 주님과 동문서답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것을 제가 이상하다고 하고 유대인들을 판단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저 역시 그들과 같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이제는 성경에서 주님의 말씀을 보고 최소한 동문서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가 하면 피조물들은 천사라고 할지라도 역시 그들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고 우리 인생들을 통해서 그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을 이루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천사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보고 이 세상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석학이라고 해도 역시 피조물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을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초를 세우고 나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성경을 우리 스스로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돌감람나무에서 찍어 본성을 거스르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치심으로 해서 다시 말씀을 해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안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인생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진리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피조물의 한계 내에서 깨달을 수 있고 믿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성령에 대해서도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인생이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자기들에게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봅니까?
그리고 인생의 지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본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의 지식으로 아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성경을 보고 아는 것을 사도 바울이 이 세상초등학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을 합니다.
십계명이 있고 그 계명 중에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문자를 보고 자기들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는 우상이라는 것을 숭배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초등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하는 우상은 그런 우상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우상이 되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이라는 문자를 보고 아니 율법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율법을 보고 실제 그 날짜에 자기들이 몸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히브리서를 통해서 그의 안식에 들어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안식일이라는 날을 지켰다 해도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면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이 안식일 문제로 주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에는 이 안식일 문제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악한 일을 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에도 없는 주일이라는 날을 만들어서 지키고 있고 그 주일의 근거를 주님께서 안식후 첫 날에 부활을 하셨다는 억지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주일을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 영생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도 그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영생이라는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영생을 얻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시면서 성경을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보다는 자기들의 본성에 따라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입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가나안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그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갈 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너를 이 땅으로 다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십년입니다
제가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야곱이 왜 이십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있었는가는 성경에 다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성경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하고 이제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다시 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나안입니다
영적인 천국을 의미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에서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장자의 명분을 속여서 빼앗은 야곱을 에서는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고 이제 그가 돌라온다는 것을 알고 에서는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병사 사백 인을 거느리고 야곱이 오는 길로 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서입니다.
그는 물론 야곱의 형입니다 그리고 에서는 본래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던 자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음으로 해서 그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을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가나안입니다
누구의 것입니까? 야곱의 것이 아니라 에서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서를 피해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너를 반드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러나 야곱 역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나타나셔서 야곱에서 약속을 해 주셨지만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는 것과 같이 리브가에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그 말씀대로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는 버리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야곱입니다
에서를 두려워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에서가 자기가 집에서 기르는 병사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기 위해서 오고 있습니다. 왜 오고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이성으로는 야곱은 가나안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죽이려고 오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야곱은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지식으로도 들어갈 수 없고 또 에서로서도 야곱은 가나안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니 에서가 야곱을 죽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의 것을 속여서 빼앗았습니다. 그럼 법으로 하면 야곱은 속여서 빼앗은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죽여야 하는 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너무 감성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야곱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비유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단지 에서와 야곱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생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만이 갈 수 있습니다. 인생인 야곱으로서는 그가 아무리 이삭의 축복을 받았다 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것 역시 비유입니다
우리 성도는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가를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를 것을 비유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야곱은 대표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고자 하는 대표성을 가지고 가르쳐 주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고 더구나 그의 형 에서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 사백 인을 데리고 야곱을 마중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야곱으로는 도무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물을 미리 앞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인들과 자식들을 앞서서 보내고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맨 나중에 홀로 남아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은 기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감성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리고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해서 이겼다고 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아니 이 씨름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은 다 비유적으로 하고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람입니다
밤새 씨름을 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리고 이기지 못하니까 야곱의 환도뼈를 치고 위골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야곱이 그 사람에 의해서 환도뼈가 위골이 되었는데도 놓지를 않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지 아니하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이제 뒤에서 하나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야곱이라고 해도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길 수 있습니까? 아무리 야곱이 힘이 강하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하고 더구나 우리가 창세기를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에서는 힘이 셌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 사람이 야곱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는데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 사람이 이기지 못했는가 하면 이미 벧엘에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언약을 하셨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9:8절을 보면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가나안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인생이 싸워서 이겨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날이 새도록 그 사람과 씨름을 했는데 그 사람이 이기지 못해서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이미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다시 들어갈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얍복 강에서 하나님이 이기시고 야곱이 지면 벧엘에서 하신 말씀은 거짓이 되고 만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꺠달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에 누가 들어가는가를 우리 성도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야곱이라고 해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입니다
물론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누가 들어갔는가 하면 약속의 씨가 가나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야곱에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아시고 그것은 벧엘에서의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그 말씀대로 이루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지금 인생 야곱의 이름을 모르셔서 그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지금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고 있고 그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십니다.

야곱이 들어갑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약속의 씨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그것은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그 안에 거하시고 있다 하더라도 그 육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으로는 가나안에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 김병덕이라는 사람은 육신의 자녀입니다 제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신다고 해도 역시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지금 야곱을 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모르셔서 묻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야곱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저 김병덕이라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세기부터 야곱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은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 육신의 자녀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육신의 자녀입니다 저 김병덕이라는 사람 역시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것을 요한복음에서 사도 요한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약속의 씨입니다.
그 약속의 씨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물과 성령으로 난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약속의 씨를 말씀을 하면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이 거듭남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약속의 씩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면서도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고 있고 오직 약속의 씨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까?
그리고 저 김병덕이라는 사람입니까? 그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그 안개가 사라지만 그 이름도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가나안입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야곱은 물론 육적인 땅 가나안을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고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야곱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곳에서 나타나셔서 그와 밤새 씨름을 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이 말씀 역시 비유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벧엘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가 다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루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택하신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주시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를 주시는데 야곱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창세기에서부터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야곱이라는 진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야곱이라는 진토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고 있고 심지어는 천국에서 만나보자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 이름입니다
이제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야곱이라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들어가는가 하면 이스라엘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스라엘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육신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를 비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고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야곱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세기에서부터 야곱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에서 말을 하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요한일서5: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누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까?
야곱이 하나님께서로 난 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까? 누가 하나님께로서 난 자 인가를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야곱이 이겼습니까? 그리고 그 이김이 무엇입니까? 육체의 이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이 창세기에서 야곱이 이긴 것을 말씀을 하면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믿었습니다.
무엇을 믿었습니까? 벧엘에서 꿈에 나타나셔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겼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겼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믿음으로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야곱이 믿음으로 이김으로 해서 그의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고 그 이름이 이제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이스라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그렇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 하면 우리의 이김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기는 방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믿고 담대하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이깁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이긴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로 난 자가 누구입니까?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육체의 이름을 가지고 자기들이 이겼다고 하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모형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야곱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제부터 네 이름은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 김병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제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 김병덕은 죽었고 이제 제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 있다는 말씀이고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고 그 생명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겨루어 이겨야 합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있는 성도를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야곱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비유로 해서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도 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라고 하셨으니까 이스라엘이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누군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야곱입니다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가 물론 이스라엘이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그 육신은 육신의 자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야곱을 보면서 그가 종교 안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의 일입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육신의 자녀들은 육신의 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누가 들어가는가를 말씀을 하고 있지만 성경을 보면서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고 더구나 축복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야곱입니다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 피조물은 이 세상에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설령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축복입니다
이 시대는 종교 안에 너무 바알 사상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 축복이라는 말씀도 거의 다 자기들의 육체가 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목사들은 이 세상의 복을 위해서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고 교인들 역시 그런 것을 바라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0:16절을 보면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신 것은 그들이 이 표적의 의미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주님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는 그것이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야곱을 축복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야곱이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심으로 해서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피조물들에게 주시는 축복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알입니다
이 시대는 너무 바알이 교회 안에 가득차 있습니다. 자기들이 받아야 하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받기를 원하는 그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이 축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탐욕에 찌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받는 축복은 축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그저 야곱의 생명이 축복을 받기를 바라고 있고 그런 그들이 종교 안에서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한 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한 떡이 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그저 이 세상의 것을 구하고 있고 그것으로 받는 복을 축복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되는 것을 축복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입니다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이 되어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생명이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우리 육체의 생명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생명입니까?
하나님께로서 난 자의 생명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생명이 무슨 생명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성경의 문자를 아는 것으로 생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고 자기들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성도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곱이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주님께서는 거듭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이 있는 자만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고 아무리 에서가 사백인을 데리고 야곱을 죽이러 온다고 해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에서가 사백 인이 아니라 사만 인을 데리고 와도 그 생명이 있는 자를 죽일 수 없고 그는 반드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면 사도 요한이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이 생명을 얻은 자 되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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