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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잘 됨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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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20-12-28 20:30 조회 : 261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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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잘 됨같이

요한삼서1:1-4절을 보면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도 요한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제자라는 것을 요한복음에서 스스로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육체적으로도 주님과는 이종사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제자로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12사도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산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사도 요한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더 내세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고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기록한 성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00세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100세를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겨우 10년 정도 복음을 전한 저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세월을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마 요한삼서 역시 그가 밧모라고 하는 섬에서 노예로 있으면서 기록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직접 기록했다고 전해지지 않고 그의 제자들이 듣고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인생의 나이로는 33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 지내고 삼일 만에 영으로 부활을 하시고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 역시 거의 다 순교를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사도 요한만이 밧모라 하는 섬에서 노예로 있다고 자연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잠깐 고통으로 끝이 나는 일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 보통의 사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사도 요한과 같이 100세를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입니다
물론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을 했기 때문에 사도 요한 역시 자기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가 기록한 성경을 보면 영의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내세의 일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기록했다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도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억지로 풀고 있지만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은 더욱 더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성경입니다
그래도 때로는 비슷하게 가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을 이방의 종교인들이 풀 때는 거의 반대로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영의 생명에 대한 말씀은 우리 인생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나이입니다
그것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정말 인생으로서도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성경을 기록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정말 깊은 영의 비밀에 대해서 감동을 해 주시고 있고 그가 기록한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영의 일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요한삼서입니다
사도 요한이 직접 기록했다고는 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사도 요한의 말씀을 들은 장로가 기록한 것으로 전승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대서가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 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아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 요한삼서 역시 억지로 해석을 하고 있고 특히 문자 그대로 보면서 마치 복음을 전하는 자를 육체적으로 접대를 하는 말씀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성경을 볼 때마다 가슴에서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습니다. 억지로 성경을 푸는 사람들도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의 길로 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저 거대한 종교에 의해서 아무 생각이 없이 이끌려가고 있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왜 봅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은 기본부터가 안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왜 성경을 보는가도 모르면서 성경을 본다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성은 일인가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우리 인생들의 본성이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5장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성경을 보는 이유입니다 이 말씀을 기초로 두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한삼서를 보면서도 기초가 흔들리다보니까 이상하게 성경을 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왜 성경을 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보다보니까 그저 자기가 보고 있는 성경의 문자를 보고 성경을 풀려고 하다가 사망의 길고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초입니다
주님께서 집을 짓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주초가 흔들리면 어떻게 되는가를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는 기초가 되는 말씀들이 있고 그 기초를 든든히 하고 성경을 보아야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주초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은 종교의 교리를 따라 세우고 있고 그래서 성경도 자기들이 배운 교리에 따라 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의 교리와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주초는 전혀 다른다는 것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종교입니다
그들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그들의 교리서에서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영의 생명도 모르는 그들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주장하는 글들을 sns를 통해서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만 받고 있습니다. 아니 서로 대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 맹목적입니다
그저 그들의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으로 마치 영생을 얻은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 영생을 어떻게 얻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이 세상의 종교와 같이 거의 샤머니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만 있고 그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해도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대필입니다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장로라고 하는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성경을 왜 보아야 하는가를 알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를 받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다툼을 일으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령 제가 저자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목적을 앞에서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있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해서 예수의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서기90년경입니다
사도들은 다 죽고 사도 요한 한 사람만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핍박이 아주 심했던 시대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300년 가까이 핍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니까 당시는 핍박을 받는 절정의 시간이었다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리고 가이오라는 인물입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성경에 몇 번 기록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누구인지를 전해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늘 말씀을 하고 있지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름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16:19절을 보면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사도 베드로입니다
주님께서 많은 표적을 나타내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주님을 영접을 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을 하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사도 베드로가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을 하니까 주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때 고백을 한 것은 사도 베드로지만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모든 제자들이 그렇게 고백을 했고 그들에게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천국 열쇠가 주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입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을 하는 자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저 사도 요한이 교회에서 인간적으로 가이오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마시고 모든 말씀은 영생에 대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히 주님께서 말씀을 하신 그대로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라고 요한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영생을 얻는 자라는 것을 우리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편지에서 충분히 말씀으로 들어서 믿고 있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가이오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을 받는 가이오는 영생을 얻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종교인들입니다
너무 심하게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면 주님께서도 자기를 사랑해 주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과는 상관이 없이 우리는 성경에서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에 대해서 증거를 받아야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단순히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인간 가이오를 말씀을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제 뒤에서 말씀을 하겠지만 가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이고 그런 가이오에게 사도 요한은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편지의 수신인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입니다
아마 어느 지역의 장로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편지를 받을 정도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나 디도에게 편지를 보낸 정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가능한 성경만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성경 외에 있는 글은 참고만 하지 확실하게 말씀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사도 요한은 반복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의 인간적인 생각을 성경에 기록한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을 하는 자라는 말씀은 주님께서도 가이오를 사랑하고 있고 그는 영생을 얻는 자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삼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말씀이라는 것으로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하는 자여 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개인적으로 가이오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입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그 세 가지를 사도 요한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이 가이오라는 사람이 왜 사랑하는 자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23:3절을 보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영혼입니다
히브리어로는 네페쉬 라고 하고 있고 헬라어로는 프쉬케라고 하고 있습니다. 영혼, 목숨, 생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실 이런 것을 일일이 말씀을 한다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저는 굳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말씀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까봐서 하고 있지만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의미입니다
설령 원어의 단어가 다르더라도 그 의미가 같으면 인용을 하는데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신학이라는 곳에서 사람들의 생각을 그 교리에 철저하게 가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에서 배운 것이 마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자체가 얼마나 모순인가를 사람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썼던 설교입니다
그런데 다시 쓰고 있습니다. 그때도 이 말씀을 그대로 인용을 해서 썼던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굳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확인을 하지 않고 설교를 썼지만 그래도 그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바로 인용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씀과 시편에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말씀은 거의 같은 말씀으로 우리는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물론 시편23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과 우리 인생에 대한 것이 겹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혼입니다
같은 단어라는 것은 이미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말씀과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씀은 같습니다. 그러니까 가이오는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이고 그런 가이오는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것을 네 용혼이 잘됨 같이라고 요한삼서에서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잘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잘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가이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나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우리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생명을 얻게 하셔서 그 생명으로 구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1:25-2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성경은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하지만 그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이 세상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한글로 번역이 될 때 범사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영어로는 all, every로 사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범사라는 한글의 뜻과 영어의 all, every의 뜻을 아는 것으로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맹목적으로 자기들이 종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으로 모든 것에 있어서 잘 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입니까?
우리는 정말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제가 이 설교를 기록했을 때만 해도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장 일부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제가 예전에 썼던 설교들을 다시 쓰는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쓰고 있는 것을 이해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그 피조물은 헛것 같고 지나가는 그림자 같다는 것을 한기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헛것이 잘 되는 것을 지금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자 가이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해서 그리고 내세에 대해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생명입니다
그 생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범사에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영어로는 all, every로 번역을 하고 있고 우리 한글개역성경은 범사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번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사도 요한은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고 이 생명은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고 이 생명을 얻는 가이오를 네 영혼이 잘 됨 같이라고 말씀을 하면서 범사에 잘 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그것을 마르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든든히 서 있는 것을 범사에 잘 된다는 말씀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살겠고
우리 성도는 이 믿음에 든든히 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고 그럼으로 해서 생명을 얻은 자 되었고 그것을 사도 요한은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그런 안개지만 사도 요한은 인생의 모든 시간을 all로 말씀을 하면서 가이오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서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가 되어서 생명을 얻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뒤에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6:13절을 보겠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가이오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에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앞에서 말씀을 한 것만 보아도 우리는 이제 쉽게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됐습니다.
그 말씀은 가이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음으로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자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먼저 가이오에 대해서 영생을 얻는 자라는 것을 결론부터 말씀을 하고 있고 왜 그가 영생을 얻은 자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는 영생을 얻는 자입니다
그가 왜 영생을 얻었는가에 대해서는 그는 늘,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 해서 그의 평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이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강건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강건한 자인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 고린도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강건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이방의 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 같으면 사도 바울도 그렇고 사도 요한도 강건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사도들이 있을 때부터 깨어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바들보다는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없습니다.
성경을 왜 기록했는가를 알고 이 성경을 누가 보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서도 그런 기초를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방의 종교인들이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의 말씀과 같이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할 것 같으면 내가 간구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성경이 기록이 된 때가 90년경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때도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보면서 벌써 그 당시 가이오와 같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미 그때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얼마나 기쁘면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더 즐거움이 없다고 말씀을 합니다.
사도 요한이 아직 살아 있는 때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의 교회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풀고 있고 자기들이 교회 안에 있는 것으로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고 있고 자기들이 믿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성경입니다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심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분이 사도들을 감동을 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경계가 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경계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경계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남의 집에 불구경하듯이 보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 있는 자기들을 보면서 자기들은 무조건 잘 하고 있고 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입니다
남은 자식에게 훈계를 하십니까? 남의 자식이 잘 되든 못 되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오직 자기 자식에게만 과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굳이 남의 자식까지 생각할 필요성이 없는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가이오입니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이오는 진리를 전하고 있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이오에게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간건하기를 간구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29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진리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제 싲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을 하실 때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입니다
그는 진리를 전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으면 사도 요한이 심히 기뻐한다는 말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없기 때문에 벌써 그 당시에도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이방의 종교입니까?
그들이 진리를 전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습니까? 그럴 것 같으면 요한삼서는 기록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이방인들이 진리를 전하지도 않고 진리 안에서 행하지도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라고 묻자 주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습니까?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많으면 사도 요한이 내가 심히 기뻐한다는 말씀을 하겠습니까? 성경을 정말 이상하게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이와가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못 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편지에 있는 성도들 외에는 저는 못 봤습니다. 저를 모든 사람이 비난을 하고 욕을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게 하는 말을 하고 싶지 않고 오직 성경에서 말씀을 하는 그대로 전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두움과 빛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두움이 있다 해도 빛이 비취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어 있고 빛이 비취지 않으면 어두움에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입니다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인 요한 삼서를 기록할 때는 이미 사도들은 다 죽임을 당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그때 교회의 실상이 어떠했는가를 이 편지를 보면서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없으면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심히 기뻐한다고 말씀을 하겠습니까?

사사기입니다
이미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면 그때는 잠시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가가 죽고 나면 이스라엘은 바로 타락의 길로 간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방의 교회는 사도들이 살아 있는 그때에 이미 율법주의가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1:6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일입니다
이방의 교회가 진리 안에서 행할 것 같으면 이 말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면 성경에서 이 문자를 아는 것으로 자기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고 기쁘다고 즐겁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어두움이 누군가 하면 바로 율법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이 깨닫지를 못하고 영접을 하지 않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진리 안에서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어두움에 있고 진리를 행치 아니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방의 종교인들은 정말 많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요한삼서를 기록할 때 교회는 거의 율법주의에 빠져 있었고 그래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를 보고 사도 요한이 즐겁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는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교회 안에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경계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방의 종교인들은 성경을 이상하게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슨 봉창 두드리는 말을 하느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하는 자기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두움입니다
율법의 행위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참 빛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시는 모든 구속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성경에서 증거를 받아 믿음으로 역사를 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임을 아는 성도가 되어서 영생을 얻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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