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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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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8-07-04 21:34 조회 : 2,291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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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잠언25:24-28절을 보면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잠언입니다

제목 그대로 사람들은 지혜서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지혜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잠언의 말씀을 많이 보고 있고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보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갈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 잠언의 대부분의 말씀들은 문자 그대로 보아도 그냥 이해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의 다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목사들부터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잠언을 보고 있다고 해도 별로 틀리지가 않습니다. 실제 잠언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모든 일이 있는 것과 같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성경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지고 이 성경을 기록했다고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 것 같으면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걱정을 하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은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인 말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결국에는 육의 사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입니다

그 인생 자체가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의 수많은 순교자들을 보시고도 그냥 침묵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때는 이렇게 하시고 저때는 저렇게 하시는 분입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의 일을 생각을 하시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을 생각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초대 교회의 그 많은 순교자들을 그냥 지켜보시기만 하셨습니다. 그들을 육적으로도 얼마든지 구원을 하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더 귀하게 보시면서 그들을 구원을 하셨습니다.

성경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성경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볼 때 눈이 감겨져 구원에 대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의 삶으로 보고 있습니다.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고 우리 성도는 성경에서 영의 일을 알아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순교입니다

그 순교를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의 자유가 무한히 있는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또 국가의 권력이 종교의 권력보다 강하다보니까 순교를 당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만 있습니다.

사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으로 해서 가끔 저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순교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종교의 열심이지 복음을 알고 있는 성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입니다

지금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을 보면 마음이 상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교가 아닌 것을 순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적은가를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들은 마치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만이 성경에서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런 성도만이 하나님께로서 온 영이 있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성경을 영의 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일로 보고 있습니다.

지혜서입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영의 일을 알아 가는데 있어서 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성경은 이 영의 일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우리는 이 영의 일을 알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내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을 보면서도 그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교회 안에서 성경과 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넓은 집에서 함께 사는 것보다, 차라리 다락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다투는 여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고 결혼 중에 여자와 다투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예전에는 정말 성경을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조금이라도 다투기라도 하면 이 잠언의 말씀을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인입니까?

다투면 여인에게만 책임이 있습니까? 성경은 마치 여인을 폄하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마치 남자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말씀을 보면서 집안에서의 모든 다툼이 마치 여인에게서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시대 거의 모든 목사들이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성경을 본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다툼입니다.

마치 모든 책임이 여인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더구나 잠언에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반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혜의 왕이라고 하는 솔로몬이 이 잠언을 기록했으니까 그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있어서 더욱 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아니 그들은 이렇게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말씀은 사실 더 이상 생각하고 말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냥 성경에 문자로 보이는 것을 보고 다툼이 있는 여인이 있으면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집입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다투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잠언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잠언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혹시 집에서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살고 있으면 혼자 살고 싶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을 하니까 자기가 생각을 해도 때는 정말 그런 것과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집에서 다투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평생을 좋은 관계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정말 생각지도 않은 일로 다투는 것이 우리 인생들의 삶입니다.

그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합니까?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뜻으로 잠언에 이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의 일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솔로몬을 통해서 이 잠언을 기록하게 하셨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있는 일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4:24-26절을 보면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여인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두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에서는 애굽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인, 여자, 부녀 등 다 같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교회를 여자로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여인이 아닙니다.

교회를 비유로 해서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대해서 이 시대는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고 있는 목사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령 누군가 이 비유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감히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냥 여자가 아닙니다.

만약에 잠언의 말씀을 이 세상의 여인으로 생각을 하면 심각하게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때마다 이 말씀이 떠오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전부 혼자 살라고 하는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억지로 성경을 풀고 있습니다. 그냥 자기들이 말을 하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의 문자를 보고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렇게 의문이 있는 말씀은 아예 전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어떻습니까?

우리 영의 일에 있어서는 너무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영의 일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모르고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을 바로 깨닫지를 못하면 교회 안에서 악만 행하다가 아니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살다가 나중에는 멸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투는 여인입니다

그 여인과 살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투는 여인이 누군지를 모르게 되면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누구와 살아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평생을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살다가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말씀은 혼자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투는 여인을 잘 다스려서 그녀와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낫다고 말씀을 하면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그냥 쉽게 보지마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말씀이 다 영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투고 있으면서도 혼자 살지 않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보고 다투는 여인이 누군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여인이 교회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여인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가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았습니다.

그 시내산이 어딘가 하면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디 입니까? 이스라엘의 성전이 있는 것이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 예루살렘은 종을 낳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두 교회를 비유로 해서 하가와 사라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여자는 교회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가는 지금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가 우리의 어머니입니까? 그것은 영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교회를 통해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성도들을 향해서 우리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종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난 자유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성경에서 여자를 비유로 해서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를 보고도 이 두 여자가 교회를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여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아니 잠언의 말씀을 따로 보고 있고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따로 보고 있습니다. 잠언을 보면서 이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이 이렇게 답을 해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성경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두 여인이 있습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낳아야 하는지를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을 낳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습니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을 낳고 있고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들을 낳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낳는가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시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땅에 있는 교회에서 낳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자기가 어떻게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에서 낳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디도서3:9절을 보면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다투는 여인입니다

이제 이 여인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인가 하면 시내산에서 반포를 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을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알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어야 합니다.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있는 곳에서는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는 교회를 잠언에서는 비유로 다투는 여인과 큰 집에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인용을 하면 이 땅에 있는 교회를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 대해서 정말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는 땅에 있는 교회를 보고 마치 그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땅에 있는 교회를 갈라디아에서 하가를 비유로 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입니다

땅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입니다 아니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 교회들은 모두가 율법을 가지고 다투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의 모든 교회가 율법에 대한 다툼을 벌이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의 문제입니다

이 시대는 자기들을 율법을 지키면서도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율법을 분명히 지키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율법을 폐했다고 강하게 주장을 하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여인입니다

그 여인을 다투는 여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는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여자가 하갈이며 시내산에서 그러니까 율법을 지키고 있는 이스마엘을 낳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사시기 바랍니다.

왜 혼자 살아야 하는가 하면 율법을 지키는 순간 그는 반드시 사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자기들이 율법을 지킨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모든 것은 율법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키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삼가 지키면서도 그리고 십일조라는 율법을 삼가 지키면서도 이스라엘이 하는 것은 율법이고 자기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율법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교회만 있습니까?

그러면 혼자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구원과 관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먼 데서 오는 기쁜 소식은 목이 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냉수와 같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입니다

그것은 영의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정말 먼 땅에서 오는 기별과 같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투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율법을 가지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심으로 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가 되어 있습니다. 이 복음을 좋은 소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는 굳이 말씀을 안 드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 부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를 스스로가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생각하면 늘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목이 마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킴으로 해서 의를 스스로가 가지려고 하고 있고 그런 육체의 의를 보면서 부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목이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의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 의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목이 마른 자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데 이 시대는 주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에 주린 자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의입니다

내 스스로를 생각해 조시기 바랍니다. 아니 성경이 우리의 의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의에 주릴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면서 의로 부자가 되어서 의에 전혀 주리지를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정말 목마른 사람에는 냉수와 같습니다.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주는 냉수와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의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좋은 기별입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어디로서부터 오는가 하면 먼 땅에서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해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있고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마치 냉수를 마시는 것과 같이 천국에 들어가는 의에 대한 문제가 냉수를 먼는 것과 같이 해결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의인이 악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흐려진 샘물과 같고, 오염된 우물물과 같다.”

의인입니다

그리고 악인입니다 교회 안에는 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해지지가 않는 교회 안에는 의인은 없고 악인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교회 안에만 있으면 모두가 의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입니다

우리 인생 스스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정의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은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스스로는 절대로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의인이 되려고 교회 안에서 율법을 지키고 있는 모든 사람을 성경은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율법의 행위를 함으로 해서 의를 나타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악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교회 안에서의 일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도 벌써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잠언에서는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롭다 하심을 얻으셔서 영으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해서 그의 영이 거하시는 성도를 의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을 해서 갈라디아서와 같이 할례를 받게 된다면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거러워짐과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입니다

생수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율법에 굴복을 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다면 그는 악인에게 굴복을 하는 사람이 되고 그는 우물의 흐드러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가 악인에게 굴복을 해서 율법을 지키게 되면 그는 더러워짐으로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냉수입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을 받아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악인에게 굴복을 해서 율법을 지키게 되면 그가 먹었던 냉수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면 더러워짐으로 해서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꿀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듯이, 영예를 지나치게 구하는 것은 좋지 않다.”

꿀입니다

성경은 좋은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꼭 좋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의미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문장을 잘 이해를 하고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예

사전에서는 영광스러운 명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꿀은 자기의 영예를 주는 말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의 꿀보다는 나쁜 의미의 꿀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은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예입니다

그것을 구하는 말을 많이 듣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헛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치 사람에게는 꿀을 먹는 것과 같이 달콤하다는 것을 말씀을 하면서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예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너무도 가지의 영예를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기들이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하고 난 후에는 그것에 대해서 간증을 하면서 자기들의 영예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된 것이지만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습니다.

명예입니다

영광스러운 명예를 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행위가 얼마나 헛된 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가 하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입니다

헛되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지나치듯이 말씀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하는 순간에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얼마나 헛되다는 것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자기의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이 무너져 성벽이 없는 것과 같다.”

베드로전서2: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다투는 여인입니다

그녀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을 받아서 의에 주리고 있던 사람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악인에게 굴복을 하지 않고 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기의 명예를 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 성도는 자기 마음을 제어를 해서 믿음으로 더욱 걷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 영의 일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입니다

그것을 신약에 와서는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마음을 제어를 하고 있는 성도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마음을 제어를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베드로전서의 말씀과 같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육체의 정욕입니다

그것을 갈라디아서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 우리가 육체로 지키고 있는 율법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하는 자는 믿음에 굳게 서 있을 수 있지만 제어하지 못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영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이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보면서도 영의 일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마음을 제어할 수 있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해서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복음을 들은 성도는 악인에게 굴복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자기의 영예를 구함으로 해서 헛된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말씀을 깨닫고 자기 마음을 제어함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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