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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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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8-04-11 08:44 조회 : 864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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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디모데후서1:8-11절을 보면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성도입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을 보면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을 주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 한 가지만 보아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가 고난을 받고 있습니까?

이 시대 기독교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고난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성도들에게 고난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고난을 받으라고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교회 안에 있는 일입니다

교회와 교회 밖을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이지 교회 밖에서 고난을 받는 것을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초대 교회는 세상에 의해서도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고난을 주는 자가 있고 고난을 받는 자가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고난을 받겠습니까? 다수와 소수가 있는데 당연히 다수에 의해서 소수가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막연하게 다수라 해서 다 고난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소수라 해도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숫자를 말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보내 신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수였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거의 혼자서 고난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고난을 받았는가 하면 다수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그 선지자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이 선지자가 전하는 복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대적을 하고 때로는 죽이기까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에게 이스라엘이 어떻게 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선지자가 환영을 받았습니까?

이스라엘이 어느 선지자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순종을 했습니까?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을 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복음에 순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으면서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선지자들에게 고난을 주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똑같이 반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제는 선지자들을 보내 주시지를 않으니까 그런 일이 없을 뿐입니다. 이제 성경이 다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그런 선지자들은 더 이상 보내시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 성령을 보내 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부터 역시 고난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이 많은가 하면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의 비유와 예표들을 보아도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적습니다. 어느 정도 적은가 하면 바다 모래 같은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 명입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성령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십만 명 중에 한 사람이 성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한 명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가 한 명이고 다른 복음을 가진 자가 만 명이면 당연히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이 시대를 보더라도 복음을 가진 자가 지극히 적습니다. 그리고 바다 모래 같이 많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른 복음에 빠져 있고 그들은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율법의 행위를 하는데 혼자서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고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함으로 해서 디모데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것을 알고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입니다

그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장로로서 안수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이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세상은 속사도라고 말을 하고 있고 실제 사도들이 떠나고 난 후에 교회의 지도자로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결론이 11절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고 말씀을 하면서 디모데에게도 역시 너도 이 복음을 위하여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성경을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디모데는 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는가를 디모데 전 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목회서신이라고 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보내는 서신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나와 같이 일을 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고 있는 일을 너도 그래도 하라고 하면서 이 서신을 보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디모데는 주의 증거와 주를 위하여 갇힌 자로 살아갔습니다.

요한일서5:10-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주의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주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면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믿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만이 주의 증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의 증거가 있습니까?

그저 성경의 문자만을 보고 주의 증거가 있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고 앎으로 해서 믿을 수 있고 믿음으로 해서 그의 안에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주의 증거가 디모데에게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주의 증거가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있다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이 계시가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부터 디모데는 이런 주의 증거를 다 들었습니다.

저입니다

이 시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디모데가 부럽습니다.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디모데와 같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솔직히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늘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은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로부터 디모데는 모든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저는 아무에게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늘 이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잘못 전할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늘 지혜를 구하고 있지만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서 들은 디모데와 같이 주의 증거를 알고 싶습니다. 아니 정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이 시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는 주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주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영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인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막연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육체의 생명인지 영의 생명인지를 말하는 사람은 없고 그저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면 말하는 사람도 막연하게 말을 하고 있고 듣는 사람도 그렇게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증거입니다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증거는 무엇인가 하면 주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이 주의 증거입니다 어느 생명인가 하면 영원한 생명인데 그 영원한 생명이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의 생명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이 영의 일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의 증거가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주의 증거가 무엇인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 시대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되었고 그 종교 안에서는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고 그 신체에 생명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주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편지를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영의 생명에 대해서 모르면 아니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생명에 있는가 하면 영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강해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생명에 대해서 배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영의 생명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입니다.

모든 종교가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윤회를 하다가 결국에는 신체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 유대교 등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신체의 구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귀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귀신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 세상에서 살던 그 신체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우리나라에게 전해지고 있는 샤머니즘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릅니다.

그런 신체는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되는 그리고 신선이 되는 그런 신체는 다 썩어 없어진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고 성령이 오심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고 그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다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오해를 해서 아니 성령이 그들에게 오시지가 않아서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주의 증거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이 무슨 생명인가 하면 신체의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빌레몬서1:9절을 보면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에베소서3:1절을 보면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만 하다가 결국에는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갇힌 자입니다

마치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았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 그대로 갇힌 자가 되어서 살았습니다.

주를 위하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목사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이 주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의 말씀을 보고 자기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주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를 위하여 갇힌 자입니까?

이 시대 목사들은 주를 위하여 갇힌 자가 아니라 사단을 위하여 갇힌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갇힌 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아니 사도 바울과 같이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노래를 부릅니다.

예수님 처럼~~ 바울 처럼~~ 이렇게 살수 없을까 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주를 위하여 갇힌 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는 살지 못할지라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 노래를 인간의 감정과 그리고 종교의 감정까지 합해서 부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목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있습니다, 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고 있다고 하는 그들이 실상은 율법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면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말은 같이 하고 있지만 행동은 전혀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주의 증거만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갇혀서 살았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 같이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부끄러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율법의 의가 없기 때문에 부끄러워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킵니다.

부끄러워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복음을 전하면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부끄러워합니까?

우리 주의 증거가 있는 성도는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설령 누군가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서 말을 한다 해도 우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위해서 살아갈 때 율법주의자가 너를 보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전부가 식사를 할 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는 그것이 외식이라는 것을 알고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주의 증거와 주를 위해서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 혼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는 우리 주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기도를 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다면 부끄러워하게 되어 있는데 그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정말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저 역시도 자신이 없습니다.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것이 외식이라서 기도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뜻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이 시대 기독교인들과 같이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서 기도를 하지 않아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들의 숫자가 열 명이고 나 혼자 기도를 하지 않고 그것을 외식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입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입니다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다른 복음에 빠져 있으면 우리 복음을 가진 자는 우리가 아무리 바른 길로 간다고 해도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 한 가지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교회에서 꼭 필요한 십일조를 반대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그 교회의 목사는 어떻게 하든지 고난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교인들은 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반드시 고난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 우리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누구를 부르셨는가 하면 우리 주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을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부르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입니다

문자로 보면서 마치 자기들을 부르신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앞에 있는 말씀이 해석이 되어야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아니 목사들은 그저 문자에 기록이 되어 있으면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부르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을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습니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대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행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행위를 하면서 자기들을 부르셨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행위는 내가 하는 것이 행위입니다

은혜는 주님이 하시고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를 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를 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도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율법을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셔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모르고 있습니다. 아니 말로는 은혜라고 하는 그들이 입에 은혜라는 말을 달고 살아가는 그들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고 하는데 행위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은혜대로 했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말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정말 기술적으로 말이 되게 해서 자기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행위를 하는 자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은혜를 받은 자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행위를 하는 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복음의 일이 환히 드러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시대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다 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비밀이 다 나타났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두움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시대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이 복음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이스라엘입니다

그들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안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그 정도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아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 시대 기독교인들이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같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을 지켰습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지만 역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이 시대 교회가 이스라엘과 같이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2:15절을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저는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망을 폐하셨습니까?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을 폐하셨다는 말씀과 율법을 폐하셨다는 말씀은 같습니다. 율법을 폐하심으로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사망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육체가 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분명히 사망을 폐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단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망을 폐하신 주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역시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빠져 모두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망을 폐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서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율법주의에 빠져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율법은 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주고 있습니다. 이 둘의 싸움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복음을 믿을 수 없고 복음을 듣고 믿는 성도는 율법의 행위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런 그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까? 그는 생명과 사망이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과 사망이 함께 있으면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 전부는 사망을 당하고 썩게 되는 율법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새번역을 보겠습니다.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입니다

이 시대 모든 목사들이 복음을 전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단 한 가지라도 지키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됩니다.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는 반드시 사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과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를 먼저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분명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그 많은 목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음에 빠져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디모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하면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또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고난을 받습니까?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 성도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구원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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