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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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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4 10:01 조회 : 1,212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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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7:15-18절을 보겠습니다. (구17쪽)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 하나이다”

 

지금 아브라함이 웃고 있습니다.

사라가 웃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며 그것을 성경을 보면서도 깨닫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서도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것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웃었다는 것을 보고도 사라가 웃었다고 생각하면서 무심결에 지나갑니다. 왜 그러냐면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한 번도 실수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겠습니까?

사라가 구십 세인데 어찌 자식을 생산합니까? 이렇게 하나님께 반문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안 믿는 것입니다 안 믿는 이유는 이스마엘을 자기 노력을 나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안 믿는데 아들을 줘야 할까요? 안줘야 할까요?

 

믿던지 안 믿던지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행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믿으면 주고 안 믿으면 안주고 그렇게 생각 합니다 또한 믿다가 흔들리면 못 받는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한번 약속한 것은 변치 않고 허락 하시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잘하던 못하던 상관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웃어도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아브라함만 웃은 것이 아닙니다. 사라도 웃었고 두 사람이 다 웃었는데도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이냐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고 있습니다.

믿음은 약속의 관계입니다 내가 잘못하고 잘하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 관계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면 하나님의 주권으로 행사하신 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하니까 아니다 네 아내 사라가 정녕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이삭이라 하라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 웃기지 마십시오. 라고 할머니가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반문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다 할머니가 아들을 낳는다 말씀 하십니다 이제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행사 하시는가 아브라함이 믿지를 않는데도 아들을 주시는가 하면 그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이라는 믿음의 정의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는 계약관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을 가진 사람과 돈을 가진 사람이 계약을 합니다. 돈을 가진 사람이 계약을 마치고 돈을 지불했다면 집을 가진 사람은 집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이 계약이 성립되었는데 돈을 가진 사람이 계약과 관계없이 다른 일을 하다가 죄를 범 했습니다 이렇게 죄를 범했을 때 이 계약이 취소되는 것입니까? 이 계약은 계약이고 죄를 범한 것은 죄를 진 것입니다 죄를 진 것으로 인하여 계약이 파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에서 아브라함이 죄를 짓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상황이던지 그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아들을 안주고 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20장에 보면 남방 그랄 이라는 곳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 가서 사라를 자기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랄 왕이 사라를 취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랄 왕에게서 사라를 찾아 돌려보낼 때 그랄 왕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네가 왜 나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을까 해서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대답 합니다

 

창세기20:11절을 보겠습니다. (구 26쪽)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아브라함이 죽을까 해서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대 그랄 왕이 아브라함을 죽이지 않고 사라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깨달았습니다. 사라를 잃어버리지도 않고 아내로 인하여 내가 죽지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확신이 왔습니다. 아직 이삭이 없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헤어지지 않게 하고 또 우리 둘을 통해서 아들을 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면? 잃어버린 아내도 찾아 주시니까요

이때 마음이 흔들릴 수 있겠습니까? 흔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주시기까지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 했습니다 이 확신이 왔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이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왜 아들을 주신다고 하시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를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잘 모릅니다.

지금 말씀을 보면서 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을 늦추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빨리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늦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더 빨리 줄 수도 있는데 그런 확신이 안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확신을 가질 때 까지 기다렸습니다. 기다리시는데 흔들리게도 만들면서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흔들리면서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확신이 왔을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진짜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믿음의 정의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세워서 아들을 금방 안 준 것은 우리가 아브라함을 보면서 믿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 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나의 행동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 했는지를 알고 그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믿음 입니다

 

그랄 왕에게서 잃어 버렸던 아내를 찾아 주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진짜로 흔들리지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확신할 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이삭입니다 우리나라 말로하면 웃음아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웃음이라고 지었느냐고 하면 백세 된 가정에 아들을 주어서 즐거워서 이삭이라고 지었다고 말 합니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지만 사라가 웃고 아브라함도 웃고 다 웃으니까 너희들 왜 웃냐 말씀 하시면서 이름을 웃음이라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그냥 보아 넘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네가 그것을 잘못했다고 지적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지적해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면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서 지금도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창세기18:11-15절을 보겠습니다. (구18쪽)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 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웃지 아니 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사라가 안 웃었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다 네가 웃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실은 모르게 속으로 웃은 것인데 하나님이 모르는 줄 알고 안 웃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지적해 주십니다. 믿음 때문에 그것을 지적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잘못되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지적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다가도 흔들리면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지적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이 그것을 깨닫고 견고해 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자기가 실수 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들만 보면 그것이 잊어버리지가 않습니다.

 

그 아들을 그렇게 낳았기 때문에 아들을 볼 때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 가지입니다 믿음이 흔들려서 넘어졌던 것을 그것이 생각날 때 마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했지 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잘못 믿었어, 생각 하면서 같은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런 실수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다짐을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어떤 말을 할지라도 절대로 웃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의 다짐을 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이제 되짚어 보면 창세기15장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다는 약속을 말로만 하셨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보면 나이도 있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때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랜 후에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경수가 끊어진 사람은 태가 죽은 것이므로 의학적으로나 어떤 방법으로는 아들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불가능한 일이 자신에게 가능한 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런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을 때 믿음이 흔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 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서 그리고 삶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견고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믿음이 점차 구체적으로 내 안에 확신이 들게 됩니다. 그런 패러다임을 하나씩 겪어 나가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담대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서 믿음이 더욱 견고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들을 통해 사람마다 다르게 또는 같은 모양으로 역사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통해, 예배를 통해, 봉사를 통해, 사랑 등을 통해서 우리가 어느새 믿음이 견고해 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고 이 아들이 오래 자라도록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서 어떤 말을 하셔도 웃지 않고 믿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 나셔서 이삭을 바치라고 말씀 하십니다

 

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는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22:1-2절을 보겠습니다. (구22쪽)

“그 일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 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그 일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 하십니다

처음에 아들을 준다는 약속을 믿었다가 흔들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시험 하십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믿습니다. 하니까 너는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시간이 흐르니까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라고 반문 합니다

처음에 완전히 믿었을까요? 안 믿었을까요? 처음 약속하실 때 완전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신다고 한 것이 25년이 넘게 흐르니까 안 믿어 진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노력으로 낳은 아들이 이만큼 자랐습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노력으로 낳은 아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의 노력이 이만큼 자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의롭게 살아진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의롭게 살아지면 약속만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내가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내 노력이 이만큼 자라게 되면 내가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의 열심을 마치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타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자기 노력으로 낳은 것이지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자기 노력에 의해 이스마엘이 자라는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어도 할머니에게서 낳는 것이 아니고 내가 젊은 사람을 취해서 낳게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셔도 백세 된 자가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사라가 구십 세인데 어떻게 아들을 낳습니까? 반문을 합니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질문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을 가르쳐 줘도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자기가 해보니까 됩니다. 지금 자기가 열심을 내니까 새벽기도회도 나가고 모든 모임 또 은혜 받으러 많이 다닙니다. 그리고 봉사도 하고 헌신도 합니다. 그렇게 해 보니까 실재로 되니까 이렇게 반문 합니다

 

어떻게 믿어서만 되냐고 열심을 내고 노력을 해야 된다고 말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도 있고 행위도 있어야 그것이 바른 믿음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또한 믿음은 약속을 믿는 것이라 설교를 하면 그럼 행동을 아무렇게나 해도 좋습니까? 반문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행동을 아무렇게나 하라고 하겠습니까?

사실 행위를 잘해 보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은 그런 말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잘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믿어서만 되냐고 심지어 공격을 합니다. 이단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왜? 내 행위가 이만큼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행위가 이만큼 자라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내 행위가 눈에 보이기 시작을 하게 되는 순간에 믿음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서 이스마엘이라는 율법의 의가 보이는 순간 내 노력에 의해 되어진 것이 보이게 되는 순간 믿음은 저만치 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삭을 바친 것이 순종 입니까? 믿음입니까?

하나님께서 네 아들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순종 입니까?

 

이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순종이란 뜻은 말한 것이 그대로 하는 것을 말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린 것 같이 순종하라고 말 합니다 너희도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라 이렇게 사람의 생각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삭을 드린 것을 순종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믿음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믿고 순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일 많은 사람이 믿고 순종이라고 말 합니다 물론 믿고 순종이란 말이 전혀 틀린 말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세워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 입니다

 

말씀대로 하면 순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순종이 아니고 믿음 입니다

이삭을 낳기 전에 아브라함은 그랄 왕에게 사라를 빼앗겼다가 하나님께서 찾아 주십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라를 통해 분명히 아들을 주실 것이 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아! 나는 이삭을 낳기 전에는 절대로 안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삭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이삭이 낳기 전인데 자신이 죽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고 사라를 다시 찾아올 때 자신은 이삭을 낳기 전에는 절대로 안 죽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 전에 죽을 수 없는 것같이 이삭도 야곱을 낳기 전에 죽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왜? 이삭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게 많게 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라고 명령 하셨지만 이삭이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이삭을 통해 하늘의 별과 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아지려면 절대로 이삭이 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이 다시 살려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삭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아브라함이 하는 것이고 이삭을 통해서 네 자손을 주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삭이 그냥 죽는 다면 하나님은 거짓말 장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셔야 하기 때문에 이삭을 살려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약속을 성취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기가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살리실 줄 믿었습니다. 이삭을 살리실 줄 확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안 죽을 것을 확신했으며 설령 자기가 번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라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히브리서11:17-19절을 보겠습니다. (신 365쪽)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 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 이니라”

 

순종으로 드렸다고 안하고 믿음으로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믿음은 약속이 있어야 하는데 17절에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으리라는 이 약속을 이삭을 통해서 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삭을 통해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이삭이 죽지 않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19절 말씀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한지라 이것을 믿었으므로 다시 살리신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죽였다가 다시 살리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죽은 줄 믿고 살리신 줄 믿고 돌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문제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다음에 행함이 있는 믿음이나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 자세히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정의는 약속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4:19-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44쪽)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그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다고 말씀 합니다 그럼 약속을 의심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 됩니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약속을 의심치 않는 것이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약속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이 있다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의심하면서도 신앙생활은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믿음이 좋다고 말 합니다 믿음은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는 것이 믿음이 있는 것이지 열심내고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어떤 일들을 잘하는 그런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약속한 것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을 저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럼 아브라함만 확신하면 믿음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도 약속한 것을 확신하면 믿음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약속에 대해서 확신을 하게 되면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23절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아브라함이 약속한 것을 의심치 않아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면 우리도 약속한 것을 의심치 않으면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약속한 것을 의심치 않으면 의인이라고 해주실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이 차이가 나겠습니까? 같습니까?

 

베드로후서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84쪽)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믿음은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사도 바울의 믿음이나 또 지금 이 시대 내가 믿는 믿음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믿음의 선진들도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갔고 또 지금 나 역시도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갑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를 내려 주신 것이지 아브라함의 믿음이나 내 믿음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도들의 믿음이나 내 믿음이 조금도 다를 수 없습니다. 물론 행위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는 믿음은 조금도 다를 수 없습니다.

 

성경은 동일한 믿음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내가 믿음이 떨어졌어! 이런 말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번 받은 믿음은 다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믿었던 그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한번 믿음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 믿음은 영원히 지속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열심을 했을 뿐이지 그에게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은 믿음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절대로 떨어질 수도 또 약해 질 수도 없다는 것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습니까?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준다고 약속하셔서 그것을 믿어서 의로 여기셨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한일서2:25절을 보겠습니다. (신 390쪽)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 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의심치 않을 때 우리는 받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을 확신한다면 우리도 의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은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받았으므로 그 은혜에 빚진 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이 세상에서 잘 사용하는 것이 축복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열심과 믿음을 구분 못하는 신앙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행위와 믿음을 구분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 행동은 늘 변할 수 있습니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일평생 잘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잘하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잘 내면 믿음이 좋고 열심이 좀 떨어지면 믿음이 없다고 말 합니다 행위를 조금 잘 하면 믿음이 좋고 행위가 나쁘면 믿음이 없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변한 게 아니라 열심이 조금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행위가 조금 나빠진 것입니다 내가 열심을 좀 못 내더라도 믿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열심이 잠시 주춤하는 것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행위와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12절을 보겠습니다. (신 305쪽)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지금 이 시대 율법주의에 너무 빠져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자기가 그 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 율법의 행위를 못하면 믿음이 나빠졌다고 말 합니다

 

너무 어리석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는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못하는 것은 그 율법의 행위가 변한 것이지 믿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는데도 삼가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말 합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좋은 것이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행위는 나를 통해 삼가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과 율법을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와 감히 비교를 하고 또 그것을 통해 믿음을 보이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너무 귀한 것입니다

그 귀한 것을 변질 시키려 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잘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인들 100명에게 물어보세요? 모두가 사도바울처럼 아니면 요셉처럼 살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누군들 그렇게 안 살고 싶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에는 거지 나사로도 있고 세금을 착취한 삭개오도 있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마리아도 있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맞이하는 한편 강도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정말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데도 연약해서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으로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주신 믿음은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입니다

 

유다서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8쪽)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믿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라고 유다서는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 믿기 싫다고 해서 안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에게 주시는 믿음이기에 이 믿음이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리 보다 더 나아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믿음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주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믿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지금 내가 믿는 믿음 또한 하나님이 주신 지극히 거룩한 믿음입니다.

 

믿음을 싸구려 취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자들은 믿음을 아주 싸구려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닌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믿음을 싸구려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 믿음을 가르쳐 주시고 있고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이 견고해 졌는가를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아브라함과 같이 늘 믿음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를 확증하면서 믿음의 기초위에 서려고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종교는 너희가 변해서 오라는 것이지만 우리 주님은 너희는 진토이니까 못하는 체질이니까 내가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3:22절 말씀과 같이 차별이 없는 은혜입니다 믿음은 오직 약속을 의심치 않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칭할 때 그가 무엇을 잘해서 의인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의심치 않고 믿었으므로 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면 너희도 천국 간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제 여러분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믿음이 똑같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주님오시는 날까지 요동치 않기를 믿습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주님만을 바라보고 헌신하는 삶이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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