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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정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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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4 11:27 조회 : 1,706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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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정의

 

고린도후서1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00쪽)

“너희가 믿음에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구원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불행하게도 구원에 대해 바로 가르치지를 않고 있으며 마치 교회에 나온 그것이 구원을 받은 표인 양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온 그 자체로 굳이 구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을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구원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합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구원의 방주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예표하고 있지만 교회는 애굽에서 광야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여정에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마치 교회가 방주가 되는 것 같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광야라는 교회에 나와서 가나안 땅에 몇 명이나 들어갔는가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와 이방인을 대표하는 갈렙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2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 주셨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물론 두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을 적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가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이라는 그림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세상에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저 세상에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다가 죽으라고 만드셨습니까? 그것은 이성이 없는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사람은 그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 나온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에 대해서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요한복음12:50절을 보겠습니다. (신 170쪽)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만약 이 세상에 태어나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 버린 사람입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한 목적이 바로 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또 성경을 보아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인과 같이 살면 뭐 합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아! 저 사람은 천국에 갈 사람이야 할 정도로 살았다 해도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멸망하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왜 교회에 나왔는지를 모릅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 나온 그 자체로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 마치 구원을 받은 것처럼 세뇌를 시키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헌신을 하는 자기 행위에 취해서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안일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가 바른 줄로 알고 아니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알고 너무도 안심을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직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여정이 남아 있는데도 깨닫지 못 합니다 그리고 자기 육신의 생명이 죽는 것을 마치 요단강을 건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죽음의 강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 육체의 생명이 죽는 것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광야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요단강을 건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서 천국에 내가 들어 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은 과거와 현재형이지 미래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비록 육체는 아직 이 세상에서 고난과 수고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영혼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가 있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너희는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이미 과거형입니다 비록 육체는 광야라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구원은 이미 얻는 과거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런 성도만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구원에 대해서 교회가 잘 가르치지를 않고 있고 또 행위에 열심을 내다보니까 구원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를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확신하는 믿음이 없다면 그는 구원을 못 받은 사람입니다 그 확신은 성경적 지혜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론을 강하게 가르치면 이상하게 봅니다.

마치 이단인 구원파로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단인 구원파가 구원을 말해야 합니까? 바른 진리가 서 있는 교회가 구원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늘 가르쳐도 지나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부터 구원이 이단의 대명사가 되었습니까?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교회가 구원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단이 흔들면 우수수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 신천지를 두려워합니까? 이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서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이단과 왜 싸우고 그들을 그토록 두려워합니까?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려가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잘못된 구원관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구원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은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통의 교회에 있습니다.

그들이 바른 구원관을 성도들에게 심어 주었다면 이단이 와서 아무리 그들을 미혹하려 해도 넘어가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 가르치다 보니까 이단의 구원관에 귀가 솔깃해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잘 가르쳐야 합니다.

성도가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확증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며 만약 그것을 모른다면 그처럼 불쌍한 인생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지 알고 있다가 나중에 버림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15:19절을 보겠습니다. (신 282쪽)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교회에 들어와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이 세상 사람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고 그리고 헌신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분복을 다 누리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내세를 확신하기 때문에 그런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쌍한 자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구원에 확신이 없다면 차라리 신앙생활을 포기하면서 세상에서 자기 마음에 족한 대로 사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늘 깨어 구원에 대한 문제를 내 스스로 확증하면서 살아가야 바른 신앙인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본문 말씀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 가 시험해 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까? 아니면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 입니까? 성경은 교회 안에 들어 온 사람들이 보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이 무엇 하러 이 성경을 보겠습니까? 이 두꺼운 성경을 그리고 도무지 이해하기도 힘든 성경을 세상 사람들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온 것이 구원을 받은 것이라면 굳이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 말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믿고 있으니까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너희가 믿음에 있는 가 너희 자신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를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없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나와 있지만 구원은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데 너희가 믿음에 있느냐 만약 너희가 믿음에 없으면 버리운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 믿습니다. 이런 말이 아니라 구원 얻을 믿음이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예수 믿는 다고 자기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천주교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세요?

그들도 예수 믿는다고 하지요 아니 천주교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에 미혹이 되어 있는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들도 자기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이단으로 정죄되어 있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그들 역시 모두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안식일 교회에 물어 보세요.

아니 통일교회에 신천지에 그리고 우리가 이단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세요 아마 그들은 우리 보고 불쌍하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나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말 할 것입니다

 

지금 구원 얻을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니까 시험을 해 봐야 됩니다. 그럼 무엇으로 시험 합니까? 성경 말씀으로 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씀 안에서 구원에 대해서 확증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한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구원에 대한 확증을 하라고 하니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어떤 은사가 나타나고 또 자기가 교회에 나가서 하는 특별한 행위들을 보면서 구원에 대한 확증을 가졌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환상을 보고 또 음성을 듣고 기도 응답을 받고 꿈을 꾸고 하는 은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특히 어느 교회에서는 방언을 하는 것을 마치 진리의 성령을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하는데 그것은 너무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내가 믿음에 있는 가 확증을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5: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 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증거를 물어보면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증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외적인 증거요 다른 하나는 내적인 증거입니다 외적인 증거는 어떤 것이냐면 기도를 해서 응답 받는 것, 병을 고치는 것, 환상을 보는 것, 음성을 듣는 것, 또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행하는 행위, 이런 것들은 외적인 증거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증거는 외적인 증거를 말씀 하는 게 아니라 내적인 증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말씀 합니다

이것은 내적인 증거입니다 그 증거가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요한일서5:11절을 보겠습니다. (신 393쪽)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이니라”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 영생을 주신 것이 증거라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은 영생을 앞으로 주실 것입니까? 아니면 주신 것입니까? 이미 주신 것입니다 이 증거라는 것은 영생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주신 증거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영생을 받았다는 확신이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겠습니다. 말씀에는 아들을 믿는 자는 증거가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생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으면 증거가 없는 사람이요 증거가 없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아들을 믿으면 내가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증거는 내 적인 것입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알게 되고 그러면 그것을 성령이 감동을 해 주어서 내 마음으로 믿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믿어지는 것이 내적인 증거입니다 이 증거가 내 안에 있어야 생명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5:24절을 보겠습니다. (신 151쪽)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다고 과거형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영생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영생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이미 영생을 얻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라는 것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믿는 것입니다

 

얻었다고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얻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틀림없이 얻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그렇게 믿도록 감동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다고 확신 하지 못하고 앞으로 얻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또 분위기에 휩쓸려 영생에 대한 자기 내적인 확신도 없으면서 영생을 말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얻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창피를 당하니까 남들이 말하니까 따라 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남들이 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자기도 그렇게 대답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은근히 암묵적으로 그렇게 강요를 하고 있습니다.

 

확신이 없으면서도 잘 믿고 있다 보면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 합니다

잘하고 있으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내 안에서 확증이 되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셔서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것과 같은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알곡이요 하나는 쭉정이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알곡이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쭉정이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영생을 못 얻었다고 생각할까요?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으면서도 역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자기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가 하나도 없다면 누구든지 자신 있게 영생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서도 항상 죄를 지니까 영생을 얻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죄 문제가 모두 해결이 안 되니까 영생을 얻었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께 대답하기를 자기들이 흠 없는 율법의 의를 가지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은 죄가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죄 가운데는 과거의 죄가 있습니다. 또 미래의 죄가 있습니다.

그다음 성경 안에는 거룩함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룩함은 점도 흠도 없이 거룩함에 있으라 하는데 자기를 보면 도저히 거룩해지지 않아서 이 세 가지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387쪽)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이런 말씀이 성경 가운데는 많이 있습니다.

거룩 하라 점도 흠도 없는 사람이 되라 우리가 많이 듣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이 자꾸 요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거룩하게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을 못 합니다 당신은 미래에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습니까? 죄를 안 짓고는 못 삽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사람은 늘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럼 과거의 죄는 용서 받았습니까? 아멘? 그럼 과거의 죄는 어떻게 용서 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회개해서 용서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대답입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은 그럼 회개를 다했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을 시원하게 하지 못 합니다 회개하면 과거의 죄는 용서 받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를 하나님께 기도해서 생각나게 해 달라고 하고 그렇게 해서 깨닫고 회개한다고 말 합니다 그럼 성경은 이 문제들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로마서3: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43)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전에 지음 죄를 간과하심으로....

전에 지은 죄라는 말은 과거에 지은 죄를 말씀 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용서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간과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간과가 무슨 말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죄를 용서 받는 방법은 회개해서 용서 받는 방법과 간과하심으로 용서 받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 회개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는데 간과하심으로 용서 받는 것은 잘 알지 못 합니다

 

간과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긴다라는 뜻의 말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단체 급식을 하는 식당에 위생검사를 나옵니다. 그런데 이 검사를 제대로 하면 합격되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 새로 신설한 곳이 아니고는 거의 불합격이 될 것입니다 원칙대로 하면 털어서 먼지가 안 나오는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조사하러 나온 사람이 자기의 판단으로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적격업체로 판단을 해주는 것을 말 합니다 문제는 있지만 그냥 보아 넘겨주는 것 이렇게 인정해 주는 것을 간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간과는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아버지가 있고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죄를 범했습니다. 죄가 작으면 잘못 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비는데 죄가 크면 용서를 구하지 않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집을 나가게 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이렇게 끊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아들은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 앞에 가야지 잘못 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 텐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어오지 않고 있을 때 중간에 있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부탁을 합니다. 아들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우리가 용서해 주자고 말할 때 아버지도 아들이 들어오지 않으니까 답답하니까 용서해 주자고 둘이 합의를 합니다.

 

두 분이 용서해주기로 합의는 했지만 이 아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합의하는 순간에 이 아들의 죄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아들이 들어와서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두 분의 합의에 의해 일방적인 용서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진 사람에게 묻지 않고 용서해 준 것을 간과라고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감히 하나님 앞에 갈수가 없는데 예수님과 하나님과 합의해서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가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용서해 놓고 그 친구를 보내서 전해 줍니다.

너의 죄를 아버지 어머니가 용서해 주셨으니까 들어오라고 말 합니다 나에게 분명히 그렇게 전하라고 하셨다고 말 합니다 이 말을 전할 때 집나간 아들이 친구의 말이 마음속으로 믿어질 때 그 순간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가서 잘못했다고 고백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하는 말이 믿어질 때 없어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어지면 부모를 떳떳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방적인 죄 용서 간과입니다 우리는 죄 용서를 와서 통회 자복해야만 없어지는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 편에서 자백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일방적으로 없애 주는 것입니다

 

이사야44:22절을 보겠습니다. (구 1022쪽)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

 

지금 이 말씀은 돌아오면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돌아오기 전에 용서하신 것입니까? 돌아오기 전에 용서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생각 하냐면 돌아와서 사정사정해야만 용서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돌아오기 전입니다

 

분명히 깨닫기 바랍니다.

죄부터 용서해 놓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 자녀 간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용서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길러 본 사람이라면 이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자식이 가엽고 불쌍해서 내가 먼저 용서를 해 주는 것입니다

 

이 용서를 말해 주기 위해서 탕자의 비유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탕자가 집나갔을 때 아버지는 먼저 용서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탕자는 죄가 너무 커 면목이 없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탕자가 죄가 작다면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남의 돼지를 치면서 배를 주리면서도 못 들어 간 것은 죄가 크기 때문에 못 들어갔습니다. 만약 자신이 죄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벌써 들어갔을 것입니다 죄 때문에 못 들어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탕자의 마음이고 아버지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나간 날부터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죄를 용서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죄를 물으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용서해 놓고 탕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마음과 탕자의 마음은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탕자는 못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도 탕자와 같이 자기 죄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 마음은 부모가 되어서 아들이 잘못하고 집을 나가 며칠을 못 들어오고 있는 것을 경험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으로 용서한 것은 탕자가 돌아오기 전에 용서한 것처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도 남김이 없이 죄가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사라지게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44:2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구 1022쪽)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 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 하였음이니라”

 

이미 우리를 구속 하셨습니다.

탕자가 죄가 있어서 못 돌아 온 것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아버지가 이미 죄를 용서 해주셨으면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용서 했으면 죄가 없어진 것입니다 죄가 이미 다 용서 되었는데 못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서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죄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처치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있어서 못 들어오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못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미 용서 해 주셨기 때문에 죄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 믿음 입니다

 

호세아6:6절을 보겠습니다. (구 1261쪽)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전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 ”

 

제사는 뭡니까?

죄를 지었을 때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죄를 지면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림으로 해서 죄를 없앴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죄를 지면 자백을 하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알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알아 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번제와 제사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정말 믿음이 있는 성도입니다

탕자의 비유 가운데서 탕자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 왔는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서 일까요?

탕자가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흉년입니다 십 수 년 전에 우리도 IMF를 겪었습니다. 그때는 구조 조정을 하여 사람들을 많이 회사에서 내어보냈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흉년이라서 자기 집에 있는 종들을 내 보내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 형편이지만 자기 집에 들어가면 종으로는 일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를 조금 알았습니다.

 

“자기는 아들이니까” 아들이 아니면 종으로 써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극심한 흉년이라 있던 종들도 내어 보내는 시기 입니다 써준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내가 들어가면 아들로는 안 받아 주지만 종으로는 받아 줄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종으로는 받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들어 갈수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탕자가 돌아 올수 있었습니다. 집나간 탕자의 죄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버지 말을 안들은 도덕적인 죄 입니다

또 하나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죄 입니다 도덕적인 죄는 아버지가 용서했기 때문에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도덕적인 죄는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난 죄 입니다 아버지가 법을 어긴 율법의 죄는 다 용서 했기 때문에 탕자는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요구하는 것은 율법적인 죄는 다 용서 했으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것은 교회 왔으니 돌아온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교회 왔다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내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러 와서 하나님이 내 죄를 전부 사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그것이 믿어지는 것이 돌아온 것입니다

 

아직도 회개해야할 죄가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죄를 밖에서 통회 자백하면서 회개해야 아버지와 삽니까? 돌아와야 삽니까? 탕자가 아버지와 살 수 있는 것은 밖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통회자백 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밖에서 통해 자백 안 해도 아버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마음을 너무 모릅니다. 탕자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던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눈물 흘리면서 통회자백하면서 어떤 외적인 행동을 해야 아버지께서 받으신다고 생각 합니다 그 사상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했다는 것을 믿는 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지금 탕자가 자백하는 것도 있고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 두가지중 진짜 회개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참된 회개는 자기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가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것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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