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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자의 축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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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03-07 19:14 조회 : 2,031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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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긴 자의 축복

 

요한계시록2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21쪽)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세상은 전쟁입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이 세상은 한 마디로 전쟁터와 같습니다. 물론 사람이 적었을 때는 유유자적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 시대는 이기는 자가 아니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이 세상에서 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기려고 너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자기들의 영혼을 지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긴다고 하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것에 대해서 이기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그런 육의 일에 대해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영의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영의 일과 육의 일에 대해서 분별이 안 되고 있습니다.

 

육으로 이기려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이기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육체적으로 이기는 자기들의 모습을 보고 마치 자기들이 영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육의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영의 싸움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육체로 이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육체로 이기는 사람은 반드시 영의 일에 있어서 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육체로 이기려고 했다가 결국에는 주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특히 그렇게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은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합니다. 특히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새벽 기도를 하기 위해서 새벽잠을 설치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새벽마다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가 영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이지 영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절에 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도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 새벽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교회 보다 더 이른 시간에 일어나 새벽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새벽 예불을 드릴 때 보면 그들이 깜빡 졸면 누군가 죽도를 가지고 있다가 그것을 쳐서 깨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새벽 예불을 드리기 위해서 자기 육체를 이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제가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영의 싸움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단지 자기 육체에 대한 싸움이고 내가 새벽 기도를 했다고 해서 마치 자기가 영의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오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세상의 누군가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방해를 하면 사단이 시험을 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우리가 이기는 것입니까? 아마 이 시대 거의 모든 교인들이 그런 싸움을 하면서 자기가 주일을 잘 지키면 영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 심하게 방해를 하는데도 자기가 주일을 어떻게 하든지 지키면 마치 구원이라도 받은 것 같이 의기양양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돈키호테입니다

육의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면서 자기가 영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그것에서 이긴 것을 아주 대단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을 모르고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자기들의 육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지는 것입니다

사단이 얼마나 지혜로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 육체를 이기게 함으로 해서 영의 싸움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육의 싸움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영의 싸움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 육체로 하는 모든 행위는 육의 싸움이지 영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이기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해서 마치 자기가 이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율법을 누가 지키게 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다 보니까 성령이 율법을 지키게 하신다고 하면서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지는 것입니다

율법을 하나라도 지키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부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그렇게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서 사망으로 끌고 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을 해 주셨지만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율법의 행위를 보면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돈키호테가 되어서 자기가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분명히 내가 어떻게 이겨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하고 또 이긴 자는 주님께서 모든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가 영의 싸움을 하는 것은 치열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쉽게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육의 싸움을 너무 치열하게 하다 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또 매일 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실족을 하고 있습니다.

 

이긴 자만 들어갑니다.

천국은 이긴 자만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겨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고 또 이기는 방법을 모르다 보니까 이기는 자가 받을 축복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는 중에 주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기는 자들이 받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이미 설교로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은 설교를 통해서 보면 되고 오늘은 이기는 자가 받을 축복이 무엇인가를 보고 또 우리가 어떻게 이기는 가를 전체적으로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2: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를 주님께서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망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생명나무 과실이 무엇이라는 것은 이미 창세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를 한 후에 그들이 영생을 할까 해서 생명나무 과실이 있는 동산 중앙에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시고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준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한번 대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준 가장 큰 복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죄 지은 인생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주었습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죽음을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 됩니다. 아마 이 지구는 벌써 아비규환의 지옥의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병이 왜 생겼습니까?

그것은 죄로 인하여 우리 몸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병이 있는 상태로 생명나무 과실을 먹고 영생을 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대도 존엄사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는 논란이 있습니다. 겨우 백세도 못 살고 죽는 인생이 병이 들어서 힘들게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차라리 존엄사를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같은 생각입니다

병실에서 눈만 깜빡거리고 1년 아니 10년을 산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차라리 죽은 것이 낫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생명에 대한 모든 결정을 하시겠지만 그래도 너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옥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옥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죄가 있는 인생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떤 복을 누리고 사는 것보다 더 큰 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누렸으면 뭐 합니까?

나이가 늙고 병이 들어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데 죽지 않고 눈만 깜빡이고 그저 하늘을 보고 있다고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으로부터 이 세상에 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고 싶다고 하소연을 할 때 방법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병이 없고 또 모든 축복을 다 누리고 살아가며 또 그런 권세가 있다고 생각을 하면 이 생명나무 과실은 너무도 큰 축복이기도 합니다. 아프지도 않고 또 죽지도 않는 가장 강한 자로서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복을 다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면 이 생명나무의 과실은 너무도 큰 축복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 지구를 혼자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지구의 모든 것이 다 나에게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는다면 그것은 또 너무도 불행한 일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모든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데 죽어야 한다면 그 에덴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그 죽음이 너무도 안타깝고 애통하기만 합니다.

 

범죄 한 아담에게는 생명나무 과실을 못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성도들에게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면 뭐합니까? 우리가 죽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모든 축복을 누리고 잠깐 살다가 죽어야 한다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누린 것과 뭐가 다릅니까?

 

천국에서는 영생을 해야 합니다.

잠깐 천국의 맛을 보여 주고 죽어야 하는 형상이라면 굳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기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처음으로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에덴에서 영원히 축복을 받으면서 살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을 합니다.

 

천국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내가 가히 사람의 말로 이를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각으로는 천국을 상상도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아담이 살던 에덴 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있어 그 사랑이 넘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부활을 할 때는 썩지 않는 형상으로 변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사보다 더 강해서 천사를 다스린다고 말씀을 하고 있고 또 왕 노릇을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나무의 열매는 너무도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400쪽)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일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태어난 인생은 모두 그 육체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슈퍼별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지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가 겨우 망원경을 통해서 하늘의 별을 보고 있지만 사실 하늘의 별이 얼마나 있다는 것조차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또 어떤 별이 있는지 그저 별의 밝기를 보고 추측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우주에서 보면 이 지구는 먼지 조각 보다 못하다는 것을 천문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1:1절을 보겠습니다. (신 420쪽)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입니다

그것은 처음 땅과 처음 하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그것은 모두가 없어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구에서 우주를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 지고 또 우리가 지구에서와 같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처음 것은 다 없어집니다.

그리고 죄가 없고 죽는 것이 없고 아픔이 없고 슬픔이 없는 천국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정해진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이 지구 안에 사는 인생들에게는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 시간표에 따라서 우리 인생들의 영혼이 결정이 된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이 지구 안에 있던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낳은 새 생명이 있어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한번 죽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번 죽는다는 것을 성경이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0:13-14절을 보겠습니다. (신 420쪽)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둘째 사망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던 모든 사람은 육체로 한번 죽고 또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이 있을 때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어서 불못에 던져져서 둘째 사망을 당한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죽습니다. 그것은 성도도 마찬가지고 또 믿음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둘째 사망을 당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째 사망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서 이 말씀 밖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어서 어떻게 둘째 사망을 당하는지는 저도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째 사망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는 성도이기 때문이며 또 이기는 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망이 문자 그대로냐 아니면 비유냐 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분명히 모든 것이 소멸이 되어 없어진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망이라는 단어는 요한계시록에만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 4번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는 둘 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거듭해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구에 살았던 사람 중에 첫째 부활에 참여를 한 자들은 성도로서 천국에 들어가 모든 축복을 누리게 되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둘째 사망을 당해 소멸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망입니다.

이 둘째 사망은 지옥에 대해서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올려 드렸지만 이 문제는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단어를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 있는 것은 사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둘째 사망을 당한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고생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고생인 지구에서는 사망이 축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천국에서는 사망이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사실 영생을 얻는 것과 둘째 사망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아직 천국을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복음을 강하게 전하면 그냥 죽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을 제가 굳이 애써서 설득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우리에게 희미하게나마 보여 주셨습니다. 지구의 종말이 와서 영생을 하는 것과 둘째 사망을 당하는 것은 마치 하늘과 땅과 같은 큰 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천국을 보았다면 아니 천국에 대해서 그래도 희미하게 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안다면 절대로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큰 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있을 때 생명과 사망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같이 치열하게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다 누릴 수 있다면 내가 가지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릴 수 있다면 사망은 너무도 큰 해라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2:17절을 보겠습니다. (신 401쪽)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버가모 교회에 하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어 두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자가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어 두었던 만나를 주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 만나는 육적인 음식입니다 만나를 먹고 그들은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을 살았습니다. 육적인 생명의 양식으로 만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먹고도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만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6:49-50절을 보겠습니다. (신 154쪽)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먹고도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추었던 만나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먹고 죽은 육체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만나가 아니라 죽지 아니하는 만나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가 천국에 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만히 알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더 이상 믿을 필요도 없고 또 소망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천국에서는 사랑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주 희미하게 알고 있지만 천국에 가면 그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 바로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나를 먹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영의 음식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을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받으면 배가 부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으면 마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배불리 먹은 것과 같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먹던 만나가 아닙니다.

감추어 두었던 만나는 먹고 죽는 그런 만나가 아니라 영원히 사는 만나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충만히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그 동산을 거니는 것과 같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다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생각을 하다가는 오해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천국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한다 해서 그것이 구원론과 연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천국은 우리 인생이 상상을 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천국은 우리 인생의 이성적인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먹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고 적게 먹으면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천국은 과연 그런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하는 신령한 몸이라는 것은 성경에서도 어떤 형체의 몸이라는 것을 밝히 가르쳐 주고 있지를 않습니다.

 

천국은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사실 그것으로는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음식을 먹는 것 같이 먹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먹었을 때 배가 부르는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만나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분명히 이스라엘이 먹었던 만나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만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 사랑을 알게 되면 배가 부릅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랑을 받는 사람은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만나를 먹음으로 그런 사랑으로 충만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또 흰 돌을 준다고 말씀을 합니다.

이 흰 돌에 대해서는 여기 단 한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흰 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이 흰 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추측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반석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2:20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을 짓는데 주님께서는 그 모퉁이 돌이 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를 그 모퉁이 돌 위에 하나하나 쌓아서 하늘의 성전을 짓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입니다

이 부분도 사실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 지상에 세워졌던 성전은 하늘의 모형을 보고 세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이 꼭 이 세상에 있던 성전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형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를 통해서 성전을 지어가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2:2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312쪽)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실 어렵습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이 드는 말씀이 분명합니다. 육을 가지고 있는 이 지구의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생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성전이 되어 가고 있는데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돌로 짓습니다.

바로 이 흰 돌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성전을 말씀을 하면서 흰 돌로 비유를 해서 그것이 또 우리가 되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지만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돌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돌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새 이름은 다른 이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으로 이해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우리가 성전이 되는 것을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바로 이 이름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설령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지금 우리가 이 이름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정도로 이해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구원 문제가 아닙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흰 돌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 이름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으면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니까 우리는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너무 어려운 것에 빠져서 거기서 머물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 아는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런 천국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지금 이 시대 이기지도 못하고 있는 자들이 그런 것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비유입니다

천국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가 그것을 다 풀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사람의 말로 가희 말할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 것에 너무 빠지기 보다는 이기는 자가 되기를 위해서 힘써 행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안 풀리는 것을 억지로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오히려 자기를 붙들어 매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너무 어려운 성경의 환상과 비유를 다 알려고 하기 보다는 구원을 받아 이기는 자가 되는 성도가 지혜롭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요한계시록을 너무 억지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미혹이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다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구원에 대한 문제가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환상을 보고 비유로 기록이 되어 있는 말씀을 너무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는 그것이 오히려 덫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환란에 대해서 자기 생각대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칠년 환란이니 삼년 반 환란이니 하면서 요한계시록을 억지로 풀어서 사람들을 겁을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환란이 오면 견딜 수 없으니까 피난처에 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문제는 제가 강의를 통해서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지구에 종말의 징조가 왔을 때 과연 우리가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자기들의 육체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너무 어리석습니다. 피한다고 해서 자기들이 종말의 화를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잘 이해가 안 되면 차라리 모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6절을 보겠습니다. (신 401쪽)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입니다 물론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분명히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만국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씀을 하는 것은 우리 인생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지구를 창조 했습니다.

그리고 에덴을 창설하시고 그 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로 하여금 에덴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이 만국이 어느 정도의 크기와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생각을 하고 있는 만국보다 더 크고 규모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9:17절을 보겠습니다. (신 128쪽)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므나의 비유를 말씀 하시면서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 네가 지극히 작은 것이 충성하였음으로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섯 고을, 열 고을은 다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볼 때 이 세상의 숫자의 개념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누구는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는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했습니다. 그것이 천국입니까? 이 세상의 숫자 개념으로 이해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누군가 다섯 고을을 차지하고 또 누군가는 한 고을을 차지하고 또 누군가는 열 고을을 차지하고 있다면 벌써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 숫자의 개념으로 누구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고 또 누구는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이미 그 자체로 천국이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누가 더 많이 차지하고 누가 적게 차지하고 하는 그런 것은 비유를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지 천국은 이 세상과 같이 이렇게 비교하는 개념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 차지합니다.

그래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제가 구원을 받아서 차지하는 것이나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서 차지하는 것이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구원을 받아서 차지하는 것이나 같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을 사람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 계시된 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성적 지식이 아닙니다. 저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영혼들이 다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구는 적게 누구는 많게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면 그는 천국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추측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딱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말씀들을 인생의 이성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왜 안 됩니까?

모두가 천국에서 열 고을의 권세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더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 세상에서 교회 안에서 자기가 잘해야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 더욱 더 행위에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작은 것 하나가 결국은 율법주의자들을 양산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더구나 이 세상과 같이 죽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곳에서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한 고을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결국에는 그 행위의 늪에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 되고 열 고을이 아니라 아예 그 영혼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물론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천국을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이기는 자가 되어야 문자 그대로라고 해도 열 고을을 차지하던지 아니면 한 고을을 차지하던지 할 것 아닙니까? 이기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차지할 고을 먼저 계산을 하고 있다면 그는 너무도 어리석은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이성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이성은 다 버리고 오직 성령의 감동을 받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쉽게 그 이성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이성으로 성경을 보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성경말씀을 자의적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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