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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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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4-02-14 21:49 조회 : 1,483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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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

 

고린도전서11:23-25절을 보겠습니다. (신 277쪽)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지난 시간에 발 씻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약의 교회가 대표적으로 하고 있는 행위가 있다면 바로 이 주의 만찬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만찬이라고 하기 보다는 성만찬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주의 만찬이 성만찬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늘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는 단어를 사용할 때 정말로 주의를 해야 합니다. 주의 만찬과 성만찬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여러분이 먼저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의 만찬은 정말 주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셨던 것이 주의 만찬입니다. 그리고 성만찬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예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이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찬

또는 성만찬이라고 합니다. 이미 거룩할 성(聖)자가 들어가 있다는 자체는 지금 이 시대 성찬을 먹는 것이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떡이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 말을 사용하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화체설입니다

성변화(聖變化)라고도 합니다. 천주교에서 성찬식 때 빵과 포도주의 외형은 변하지 않지만 그 실체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교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12세기에 처음으로 화체설이라고 불린 이 교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몇몇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빵과 포도주의 외형은 변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현존한다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문자적 진리를 수호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말 합니다. 13~15세기에 스콜라 신학자들이 잘 정의한 이 화체설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63) 문헌에 수록되었습니다. 신비스러운 변화에 의해 일어나는 실제 임재에 대한 신앙은 스콜라적인 형식을 갖추기 이전에 이와 유사한 용어로 그것을 설명했던 교부신학자들에게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화체설입니다

그 교리가 몇 몇 교부들에 의해서 20세기 초에는 그것이 의미의 변화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천주교는 이 화체설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하면 바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게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성경에서 누군가 행했던 것은 반드시 행하는 것이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니다. 그것에 대한 뜻을 알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해서 교인들이 마치 자기가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고 또 그런 예식이 너무도 거룩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거룩할 성(聖)자를 붙이고 있습니다.

 

성찬

이것은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화체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미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고 하는 것에 거룩할 성(聖)자를 붙였다면 그 떡이 거룩하고 포도주가 거룩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찬이라는 말 자체의 뜻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절대로 이 성찬식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찬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냥 주의 만찬이라고 하지 성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그것을 성찬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찬이라는 말에는 이미 그 떡과 포도주가 거룩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고 그 예식에 참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말속에 담겨져 있는 그 뜻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거룩한 예식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거룩해져 있습니다.

말로는 상징설 기념설 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이미 그것은 상징도 아니고 기념도 아닌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가 얼마나 복음에 방해가 되고 있는 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찬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상징이 됩니까? 주의 만찬이라고 하면 혹시 상징이 될 수도 있고 또 기념이 될 수도 있을지 몰라도 이미 성찬이 되어 있는데 그것을 행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은 그것은 성스러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과 행위가 같아야 합니다.

말로는 아니 그들이 만든 교리로는 그것이 상징이고 기념이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들이 실제 교회에서 이 예식을 행할 때 성찬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교인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도라면 절대로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고 또 그러한 예식을 행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종교가 되어서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분별이 안 되기 때문에 그저 신앙의 선배들이 해 왔던 것이고 또 교회의 교리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그저 따라가고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도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육의 사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를 보고 그대로 자기 몸으로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영의 사람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뜻을 알고 주의 만찬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1장17절 위에 있는 제목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만찬의 제정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누가 성만찬을 제정했다는 말입니까? 자기들이 성경을 편찬하면서 성경에도 없는 말씀을 첨언을 해서 이렇게 성경을 변개 시키고 있습니다.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을 성경에 써 놓고서 이 성경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성만찬을 제정하신 말씀으로 보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성경은 참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왜 성경 말씀 외에 자기들 마음대로 성경을 변개를 시키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 사람은 이 시대 성경을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제목을 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제목에 이미 미혹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첨언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보는 일반 교인들은 성경으로 오해를 하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들이 얼마나 큰 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목을 정해 놓으니까 성만찬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또 이 성만찬을 하지 않으면 그 목사를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습니다.

그런데 자기 목사가 성만찬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읽은 일반 교인들은 목사에게 요구를 합니다. 왜 우리 교회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성만찬을 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목사도 그 뜻을 잘 모르다 보니까 그들의 요구에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17-19절을 보겠습니다. (신276쪽)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첫째는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대강 믿노니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새번역입니다.

“다음에 지시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교회에 모일 때에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있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환히 드러나려면, 여러분 가운데 파당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11장의 말씀을 연결해서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주의 만찬에 대해서 새롭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1장 앞에 있는 말씀과 연결을 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고 이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다음에 명령하는 일에 대해서 칭찬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칭찬을 할 수 없는가 하면 그들이 주의 만찬을 먹는 일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칭찬을 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칭찬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모이는데 그 모여서 하는 일이 유익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일이 유익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해가 된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하는 그 일로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해가 된다는 말씀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만찬을 하는 그들이 유익이 되지 못하여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열이 있습니다.

11장 앞에서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분열이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도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한 교회지만 사도 바울이 떠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 분열이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 완전하게 진리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분열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지금 분열이 나쁘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약간의 분열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너무 어느 한 가지만을 쫓다 보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분열이 있어야 긴장감을 늦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열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이 밝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너무 분열이 없다면 누가 옳은지 아니면 나쁜지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 분열은 진리에 대한 분열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가 분열을 합니다.

그들이 분열을 하는 것은 모두가 육적인 것을 가지고 서로 이익을 위해서 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두고 서로 자기가 교회의 주인이라고 싸우고 있는 그런 분열은 누구도 옳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육적인 것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분열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어떤 잘못을 했습니다.

그것이 대부분은 육적인 잘못입니다 영적인 잘못을 가지고 분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다 육적인 잘못을 한 것으로 가지고 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누구도 옳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추악한 분열을 하고 있으면서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어느 누구도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육의 것을 가지고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옳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파당이 있으면 반드시 옳은 사람이 나타납니다. 이 시대 파당은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고린도교회는 진리를 가지고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서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 여자가 누구고 남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파당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파당으로 해서 옳은 자가 나타난다고 사도바울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너무 모릅니다.

여자가 누구고 남자가 누구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여자가 기록이 되어 있으면 무조건 생리적인 여자로 생각을 하고 있고 남자도 역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11장을 통해서 여자와 남자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주의 만찬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설교로 작성을 해서 그리스도편지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주의 만찬이 무엇인가를 먼저 성경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누가복음22:19-20절을 보겠습니다. (신 134쪽)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주의 만찬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저녁을 드시면서 떡을 가져 사례 하시고 저희에게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의 만찬이라는 것을 우리가 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떡을 가져 사례를 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성찬식이 아니라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식사 후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잔도 이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은 제자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고 포도주를 주신 것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의 만찬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과 같이 아주 작은 떡을 만들어서 한 조각씩 받은 먹고 또 아주 작은 잔에 포도즙을 만들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저녁 식사를 하시면서 주님께서 실제 떡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이 떡은 중동지방에서 먹는 전병과 같은 떡입니다 그러니까 누룩을 섞지 않은 무교병을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면 밥입니다

실제 이대로 행하려면 밥을 밥그릇에 퍼 주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식사는 빵입니다 누룩을 섞지 않은 무교병을 구워서 만든 빵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행한 것은 이미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교병을 먹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제 그대로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신 것이지 지금과 같이 아주 작은 떡을 성찬기에 올려놓고 그것을 한 조각씩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찬이 아닙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 떡이 제자들을 위하는 내 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무교병을 먹은 것과 같이 주님께서 지금 제자들에게 무교병을 떼어 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라는 것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실제 떡이 주님이 몸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저녁을 드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애굽에서 나올 때 무교병을 먹은 것을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무교병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떡을 먹어야 합니다.

지금 성찬이라고 하는 그 떡을 먹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주시는 그 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무교병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이 무교병을 먹지를 않고 있습니다.

 

또 이 피를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역시 이 피를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언약을 해 주신 그 피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신 그 피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찬이라고 하는 것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살을 먹지 않고 있고 또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를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성찬이라고 하면서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을 약식으로 만들어서 그것을 그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 이 시대 모든 교회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 기념을 하라고 하셨으니까 이것을 기념해서 그대로 행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성찬을 행하고 있고 그것을 교회의 교리로 세워 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성경에 문자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어떤 행위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행하면서 실제 자기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를 하고 또 마치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디도서3:5절을 보겠습니다. (신 349쪽)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찬식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행하는 바 의로운 행위라는 것을 정말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예식으로 행하면 마치 행위가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교리로 정해 놓은 것은 행위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의로운 행위입니다

성찬은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미 성찬식이라는 말에 거룩하다는 뜻이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주님께서 하신 일이고 또 이것을 기념하라고 하셨으니까 그것이 행위라고 생각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 사람들은 행위가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행위입니다

내 육체로 행하는 모든 일은 다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 육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행위라는 것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행위로 하는 사람은 다 멸망을 당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스도편지 설교를 아무리 많이 보면 뭐 합니까?

 

행위를 그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설교를 그저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자기가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행위는 그대로 하고 있으면 이 지식이라는 것은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행위로 말미암은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디도서를 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은혜를 주시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주의 만찬을 자기들 마음대로 성찬이라고 하면서 교회 안에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사망입니다.

주의 만찬을 행위로 하는 자는 반드시 사망입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행위라는 것을 모르고 지금 이 시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성찬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가 그것을 합니까? 이미 천주교에서 그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이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깨달을 지혜가 없어서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면서 우리가 맞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맞습니까?

천주교의 성찬이 맞습니까? 기독교의 성찬이 맞습니까? 이것은 둘 다 행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이런 행위를 여러분이 버리지 못하면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가 없어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서 그것을 약식으로 하면서 성찬이라고 교회 안에서 행위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 행위로 말미암지 않습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말씀은 다시 말씀을 드리면 행위를 하는 의롭고 거룩한 행위를 하는 자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몸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믿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아니 아직도 성경을 보면서 초보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런 행위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 만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고 또 잔을 가지고 포도주를 부어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행위들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이 성찬식을 더 거룩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들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화를 가지고 있는 성도는 굳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보화에 대해서 행위로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보화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보화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하든지 행위로 나타내고자 한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보화가 있는 성도는 그 어느 누구가 자기를 멸시를 하고 또 거짓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자기 안에 있는 보화가 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20절을 보겠습니다. (신 276쪽)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새번역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분열되어 있으니,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분열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분열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먹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만찬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직접 떡을 때어 주시고 또 주님이 잔에 포도주를 부어 주셨다면 그것은 주님의 만찬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분열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으로 분열이 되었는가 하면 남자와 여자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모르고 한쪽에서는 생리적인 남자로 생각하고 한 쪽에서는 영적인 의미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을 여자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이렇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태에서 한 자리에 모여서 먹는다 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먹습니까?

진짜 식사를 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거의 다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성경에 대해서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서로 분열을 되어서 결론을 못 내리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들이 교제를 한다 해도 그것은 주님의 만찬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남자가 누군가 여자가 누군가를 가지고 고린도교회 안에서 서로 분쟁이 있습니다. 한 편에서는 생리적인 남자와 여자를 이야기 하고 있고 또 다른 편에서는 남자는 구원을 받은, 사람 여자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쟁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 자리에서 먹는다 해도 그것은 주의 만찬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10:16-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75쪽)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우리가 한 몸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를 함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떡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성막에서 진설병 상에 매 안식일에 떡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떡 상에 있던 떡이 내려오면 그것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지극히 거룩한 성막에서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이었습니다.

 

한 떡입니다

그런데 한 떡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구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고 누구는 성경에서 메타포를 찾아서 보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우리에게 주시고 있는데 교회 안에 분쟁이 있습니다.

 

서로 옳다고 합니다.

아마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린도전서11장에 시작을 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서로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고 실제 생리적인 남자와 여자로 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생리적인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를 남자라고 하고 있고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을 여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있습니까?

한 떡에 참여를 해야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있는데 고린도교회는 분열이 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진리를 알고 있는 성도가 있고 그저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둘이 모여서 주님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그리고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는 주의 만찬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다르게 주장을 하고 있으면서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의 만찬이 될 수 없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한 떡에 참여를 해야 주의 만찬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그것은 모두가 한 떡이 참여를 했을 때 주의 만찬이 됩니다. 당시 교회는 지금의 교회와 다르게 장로들이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담임 목사의 절대적인 권위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그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이견을 말할 수 없는 니골라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사도 바울이 여러 명의 장로를 함께 세웠습니다.

 

한 몸입니다

당연히 한 몸이면 분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모여서 오직 주의 만찬 만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고린도교회는 서로 분쟁을 하고 있어서 주의 만찬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주의 만찬을 먹고 싶어도 먹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고린도교회는 진리에 서 있는 장로들이 있어서 분쟁을 하고 있지만 이 시대는 니골라당이 되어서 분쟁이 안 되고 있고 담임 목사의 말이 곧 법이 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21-22절을 보겠습니다. (신 276쪽)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 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비유입니다

지금 실제 고린도교회 안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사도 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잘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부자도 있었고 정말 한 끼도 못 먹는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식사를 하면서 서로 차별을 하고 부자는 자기들끼리 먹고 가난한 자는 굶고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보고 그것을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가 아닙니다.

물론 고린도교회에서 있었던 실제의 일을 가지고 사도바울이 비유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이런 사건들을 실제로 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다 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새번역입니다.

“먹을 때에,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먼저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여러분에게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입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점에서는 칭찬할 수 없습니다”

 

먹을 때입니다

무엇을 먹을 때입니까? 실제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을 때입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일요일에 마음대로 모일 수가 없어서 한번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면 저녁까지 듣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부자는 자기 먹을 것이 준비를 해오고 가난한 자들은 먹을 것을 준비를 못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사람마다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배가 고프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서 주의 만찬을 먹는다고 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실제 그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비유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분쟁이 있어서 누구는 제가끔 자기 저녁을 먹으니까 배가 고픈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 배가 고프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만 교제를 하니까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누구는 술에 취합니다. 이 술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율법에 취했다는 말씀입니다

서로 분쟁이 있다 보니까 자기들끼리 주의 만찬을 먹어 버리니까 누구는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프다 보니까 술에 취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을 떼어 먹고 그가 주는 포도주를 먹어야 하는데 교회 안에 분쟁으로 인하여 배가 고픈 사람이 있고 또 예수 그리스도를 못 먹어서 율법의 술에 취한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마실 집이 없습니까?

그렇게 분쟁을 하고 자기들끼리 주의 만찬을 먹으려면 집에 가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제가끔 저녁을 먹으려면, 주의 만찬을 먹으려면 차라리 집에 가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서로 분쟁이 있다 해서 아직 초보에 있는 배고파하는 사람들까지도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을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집에 가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주의 만찬을 먹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던 고린도교회에는 이제 분쟁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분쟁이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이 시대는 분쟁 자체도 없고 그저 니골라당에 붙들려서 꼼짝을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멸시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설령 주의 만찬을 먹고 있다 해도 다른 사람과 분쟁이 있다 해도 그들과 어떻게 하든지 함께 주의 만찬을 먹어야 하는데 지금 고린도교회는 자기들만 주의 만찬을 먹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님의 살을 먹지 못해서 영생에 대해서 배고픈 사람이 나오고 또 율법의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이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를 하고 있고 또 가난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주의 만찬을 먹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를 하고 있고 또 가난한 사람이 주의 만찬을 먹지를 못하게 되니까 나중에 주님이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 참으로 놀랍습니다.

늘 성경을 해석하고 있지만 저 역시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주의 만찬이 무엇인가를 사도바울이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주의 만찬을 자기들끼리 먹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를 하고 있는 것이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만찬입니다

그것은 모여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먹어야 합니다. 자기가 부자라 해서 아니 자기가 진리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해서 아직 모르고 있는 가난한 사람을 제외하고 자기들끼리 먹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멸시를 하는 행위가 되고 또 가난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솔직히 주의 만찬을 먹고 있는 사람조차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이것을 칭찬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먹을 사람은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교회에서 초보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을 가난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자와 같이 주의 만찬을 먹지 않으면 그가 율법의 술에 취하게 됨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칭찬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만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성찬식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만찬을 먹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성찬식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자기들의 교리에 의해서 성찬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구원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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