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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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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4 09:57 조회 : 1,444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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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정의

 

갈라디아서3:6-7절을 보겠습니다. (신304쪽)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세상 모든 종교는 행위의 종교이지만 기독교만은 믿음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느냐고 한 마디로 정의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천국에 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에서 믿음을 배우려 하기 보다는 행위를 배우고자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그것을 지금 이 시대도 역시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의 현실입니다

 

교회가 타락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믿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행위에 집착을 하게 되어 있고 그 행위를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마음속에 있는 믿음을 자꾸 사람들은 그것을 행위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마음에 있는 것을 보이고자 하며 자기를 의롭게 나타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칭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이 말씀은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과 같이 천국 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보고 믿음에 대한 바른 정의를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어떻게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믿기를 바라지만 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에 따라 자기의 주장이 잘 믿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믿음의 정의를 모르기 때문에 이것이 잘 믿는 것이다 저것이 잘 믿는 것이다 라고 각자의 주장을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잘 믿는 것을 말하기를 열심히 새벽기도 나가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을 잘 내고 그리고 교회 안에서 어떤 행위를 잘하면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 합니다 또한 자기가 무엇을 조금 잘 하면 마치 믿음이 좋은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지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서 기도를 합니다. 또 은혜롭게 찬송을 부릅니다. 그런 행위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잘 하면 믿음이 좋고 잘 못하면 믿음이 나쁘다고 합니다. 또 죄를 많이 지면 믿음이 나쁘다고 말 합니다. 과연 믿음이 그런 것과 연결 지어서 말할 수 있는가를 이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기초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면 하나님께 합격될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기준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럼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하셨을까 라는 이 문제를 가지고 믿음의 정의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잘 했습니다. 갈데아우르를 떠나라고 하니까 자기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럼 어떤 일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칭하셨고 그 말을 들을 만큼 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삭을 바쳤을 때입니까? 아니면 순종했을 때입니까?

아마 많은 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삭을 바치는 순종을 했을 때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인이라 칭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이 말씀은 그런즉 아브라함과 같이 믿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내가 감히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고 대답 합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 자체가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것이며 또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면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 합니다 하늘나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가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 가겠습니까? 당연히 믿음이 있는 사람이 천국에 갈 것이라는 것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사실은 믿음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 그들의 말을 들어 보면 믿음이 아니라 어떤 행위가 좋은 것을 보면서 믿음이 좋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진리의 성령의 감동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를 보면서 아! 믿음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 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가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천국가지만 나는 지옥가야 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 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믿음은 100%입니다

만약 99가지를 믿었는데 단 한 가지를 의심해서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혹시 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다 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믿음은 있는 것과 없는 것입니다

99.99%를 다 믿었어도 0.01%를 안 믿었다면 그는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는데 믿음이 있으면 100%를 다 믿는 것이고 단 0.01%라도 믿지 않으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아 졌다 나빠졌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를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니까 아브라함의 믿음과 내 믿음을 비교를 하게 되고 감히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하는 자체를 교만한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다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삭을 바쳤을 때 의인으로 칭했다 순종했을 때 의인으로 여기셨다고 생각 합니다 과연 그 생각이 맞는 가 성경을 통해 확인을 해 보겠습니다. 오늘 믿음에 대한 정의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믿음이란 단어의 뜻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사전적인 뜻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적인 믿음에 대해서는 신의 은총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믿음은 신이 직접 주는 내적인 확신이나 사랑의 태도라고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제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믿음이라는 단어를 이 사전적인 뜻을 보면서 조금 윤곽이 잡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잘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 사전적인 뜻만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국민은행을 많은 사람들이 이용 합니다 그 은행을 믿으니까 많은 사람이 돈을 예금할 것입니다 그곳에 돈을 예금하는 사람들이 국민은행을 똑같이 믿겠습니까? 아니면 다르게 믿겠습니까?

 

은행에 돈을 예금하고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믿을 것입니다 만약 은행이 예금해 놓은 돈을 안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곳에 예금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똑같이 믿고 있기 때문에 돈이 많은 사람이나 돈이 적은 사람이나 그곳에 예금을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예금을 한 사람들의 사람은 악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선한 사람도 있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은행을 믿는 것을 죄인이 믿는 것과 의인이 믿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까? 아니 살인자가 은행을 믿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까?

 

예금한 사람이 죄인이냐 의인이냐가 아니고 그 은행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라고 하는 것은 그 은행에 예금한 사람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금한 사람 편에 있다면 의로운 사람은 은행을 잘 믿고 죄를 많이 진 사람은 은행을 못 믿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은행에 예금 하는 것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그 은행을 동일하게 믿는 믿음으로 예금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악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해도 그 사람이 그래도 그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곳이 은행이기 때문에 예금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는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해도 은행을 믿기 때문에 예금을 합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은행에 예금을 믿고 한다는 것은 은행과 나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은행과의 약속을 믿는 것이지 내가 은행에 대해서 어떤 행위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은행 앞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행과 나와의 약속을 믿는데 있어 내 생애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은행에 내가 예금을 하면 언제든지 돈을 찾을 때 준다는 것이 약속입니다 얼마가 지나면 이자는 얼마를 주고 이런 것을 약속에 의해서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여러분이 저를 믿는 다고 하면 제가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까? 제가 착한 일을 해야 여러분이 저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반대로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는 다면 제가 약속을 잘 지킨 다는 것입니다

 

제가 매일 사기 친다면 여러분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안 믿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내가 사기 치면 여러분은 저를 못 믿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도 내편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말을 합니까?

교회 안에서 어느 집사가 헌신을 하는 그 행위를 보면서 김 집사님은 믿음이 참 좋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아무 거리낌이 없이 하고 있습니다.

 

몰론 상대가 잘 하면 나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마음으로 믿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잘하는 그 행위를 보고 믿음이 좋다 나쁘다 말하는 것은 사실 믿음에 대해서 그 뜻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므로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믿는 것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마음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위를 보고 믿음이 있다 없다고 말 합니다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아주 쉽게 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모르니까 문제가 많이 발생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하실 때가 이삭을 바쳤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15:1-6절을 보겠습니다. (구 18쪽))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 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 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주겠느냐 말씀하시니까 아브람이 대답 합니다 내가 데리고 다니는 엘리에셀이 있는데 이 아이를 상속자로 잘 크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다 그 아이는 네 후사가 아니다 네 몸에서 날자가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보이면서 저 하늘의 뭇별과 같이 네 자손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할 때 그 약속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의인이라 여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아브람을 의인이라 여기셨다는 말씀은 다른 곳에는 없습니다. 순종을 잘했을 때 그런 말씀 안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별과 같이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했을 때 그 약속을 믿으니까 너는 의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무엇이냐 믿음은 내 생애가 어떻게 변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브람의 생애가 깨끗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을 의심했다면 아브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약속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에는 반드시 대상의 약속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믿고자 하는 사람이나 어떤 대상이 그 약속을 변함이 없이 행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중에 많이 기도 합니다

 

하나님 내가 무엇을 계획했으니 이렇게 해 주십시오 또는 돈을 1000만원만 주십시오. 말하며 기도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가 복음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 내 형편을 아시니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면 줍니까? 안 줍니까?

믿을 때는 주고 안 믿을 때는 안줍니까?

맡길 때는 줍니까? 그럼 저도 맡겨 볼까요? 10억만 달라고요? 우리는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심 없이 믿고 구하면 다 준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의심 없이 믿어도 안 주십니다 하나님이 안 주십니다

 

믿음을 모르면 준다고 말 합니다

무조건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주신다고 말을 합니다.

오히려 안 준다고 하면 저 보고 믿음이 없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순교를 당할 때 자기 생명을 위해서 기도를 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그냥 나이가 들어 죽는 것이라면 기도를 안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는 그런 끔찍한 죽음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기도를 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초대 교회에 순교자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순교하도록 그냥 두셨습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안 하는 것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 반드시 들어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그들의 마음에는 샤머니즘 적인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기복주의 사상이 만연을 하면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고 주장을 합니다. 바알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으면 기도를 해서 받을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아니 지금 교회 안에는 그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도 있고 안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꼭 준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줄 수도 있고 안줄 수도 있나하면 약속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틀림없이 주십니다. 그러나 약속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줄 수도 있고 안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믿으면 틀림없이 줍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몇100억이라도 틀림없이 줍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안했는데도 평생을 10억 달라고 기도해도 못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 입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돈이 많이 있습니다.

한번 조금도 의심 없이 찾아가서 내가 하나님 일 좀 하려는데 100만원 줄줄 믿고 왔습니다. 그렇게 말해 보세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주겠습니까? 안 주겠습니까?

 

아마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오늘 회사로 와라 내가10억 주겠다고 말해서 찾아가면 분명히 줍니다. 약속 없는 것을 나 혼자 믿는 게 믿음이 아니고 먼저 상대방이 약속을 해서 그것을 믿고 가는 것이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약속이 안 되어 있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생떼를 쓰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좀 정신이 이상한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전혀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와서 믿습니다. 하면서 100만원을 달하고 하면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겠습니까? 아마 겉으로는 말 안 해도 속으로는 별 미친 사람 다 보겠네 할 것입니다

 

그런 일을 교회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믿음이 좋은 것으로 오해를 하면서 아주 생떼를 쓰면서 응답될 때까지 기도를 하라고 하면서 밤을 새우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믿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샤머니즘 적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는 무당이 하고 절에 가면 더 많이 아주 지극 정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음의 정의를 잘 모르다 보니 무조건 기도하다가 안주니까 실망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니까 그 사람은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왜? 저 사람은 주는데 나는 안 줍니까 원망하면서 실망해 버립니다. 믿음의 정의를 바로 알면 실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그것을 받을 분복이 주어졌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가 기도를 해서 준 것이 아니라 분복이 있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또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해서 받았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사단도 얼마든지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혹여 라도 사단의 놀음에 장단을 맞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은 천하만국을 다 보여 주면서 그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천하만국에 있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단이 그 기도를 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복주의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사단은 그런 기도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기도 응답이 내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기회가 되면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 준다고 약속 했는데 모든 사람에게 아들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만 아들 주는 것입니다 아들 못 낳는 사람 모두에게 아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을 때 그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믿음의 정의를 통해서 지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을 때 첫 번째는 그 약속을 믿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계약을 했을 때 1000만원 가지고 있는 사람과 1억 원을 계약했다면 그 사람은 부도가 날수 있습니다. 약속을 아무리 잘 지키려 하지만 그 능력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부도가 날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됩니다.

 

약속은 반드시 그 능력의 한계 내에서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서울역에서 물 한 동이를 가져 오겠다면 하면 여러분이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닷물을 이곳으로 끌어 올린다고 말하면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약속을 지키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제 능력으로는 바다 물을 이곳으로 끌어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를 잘하는 운동선수가 신기록을 세우겠다고 하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수도 아닌 제가 이번 대회에 출전을 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겠다고 한다면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내 능력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를 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계 신기록을 세우겠다고 하면 그것은 허황된 이야기입니다 믿기는 커녕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약속은 반드시 그 능력 한계 내에서 해야지만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어떤 것을 약속 했을지라도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다 해 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했다면 어떤 것이라도 이루어 질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이 세상 온 우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능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바로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시고 또 그에게 붙은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을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믿고 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신 이가 또한 죽은 우리를 부활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하는데 있어 주고 안주고는 누구에게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 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주신다. 그것은 내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달려 있습니다.

 

주권입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약속, 능력, 어느 정도는 믿을 수 있는데 이 주권 부분에서 사람들이 마음을 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아주 기분 나빠 하기도 합니다. 왜 기분이 나쁘냐면 자기도 생각하는 이성이 있고 또 자기도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주권을 믿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사상이 너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믿고 싶어도 못 믿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 그리고 의롭게 산 사람이 좋은 대로 간다고 알고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권에 대해서 인정을 하기 싫어합니다.

 

특히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납니다.

나 역시 이 주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면 거의 100% 율법주의에 사로 잡혀 있다고 보면 맞습니다. 자기들이 잘 해서 그렇게 잘한 자기들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해도 구원을 못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아주 기분 나빠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사실 알미니안 주의가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서9:11-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51쪽)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이 세상 생각으로는 완전히 엿장수 마음입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부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만약 이 믿음이 없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자라고 규정을 해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는 잘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는 평생 교회에 나와서 온갖 일을 다 했는데 구원을 못 받고 죽을 때 돼서 이제 겨우 교회에 나왔는데 택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는다면 평생 그렇게 헌신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사실 이 주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아주 잘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잘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고 또 남들이 휴가를 갈 때도 나는 참고 주일을 아주 잘 지켰는데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주권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받아들이지 못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자기가 남들보다 더 잘 했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 주권에 대해서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선택을 했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또 그럼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겠네 하면서 주권에 대해서 침해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성경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선택을 하셨을 때는 그냥 놓아두시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강도짓만 하다가 사형을 당하는 한편 강도도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어야 합니다.

왜 믿어야 하는가 하면 천국의 주인이 누구 것인가를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10억 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1억 원을 누구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의롭게 산 사람에게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꼭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줍니다.

사회에 기부를 한다든지 아니면 학교에 기부를 한다든지 아니면 길가는 거지에게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세상이 인정하는 보통의 상식을 따라 행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아버지라고 말씀을 합니다.

고아의 아버지시고 과부의 재판장이고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가를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나 역시도 내 마음이 끌리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재산을 주려고 합니다. 역시 하나님께서도 누구의 하나님이신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겠다면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행하는 의로운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내 행위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이 불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 죄인입니다

내가 볼 때 나는 의롭게 산 것 같아도 역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죄인이냐 아니냐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불의하게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의 눈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아담은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담의 허리에 있을 때 함께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정녕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그 후에 얼마나 선하게 의롭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 죽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택하시겠다고 주권을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리브가의 배 속에 있는 에서와 야곱 중에서 왜 야곱을 택하셨는가를 야곱의 고백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나그네라고 자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창세기47:9절을 보겠습니다. (구75쪽)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왜 야곱을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됩니까?

에서는 이 세상의 주인이었지만 야곱은 자기 스스로가 나그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계속해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언급을 하신 것은 바로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가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마음이 가 있는 불쌍히 여기는 그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주권입니다

 

성도는 나그네입니다

그리고 고와이며 과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 똑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그 중에 마음에 가는 불쌍한 자들에게 손을 내 밀고 계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내 의를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행위가 보이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보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를 못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망했는가 하면 바로 자기 행위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수 없었고 자기들이 당연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자기들의 행위를 보면서 마음에 부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 주의는 주권에 대해서 부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인정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절대로 하님의 주권에 대해서 믿지를 못 합니다 율법을 잘 지켜야 하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면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그 율법의 의가 별 것이 아닌 것으로 변하기 때문에 더욱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3가지 조건입니다

이 믿음은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받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 또한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가 받았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을 수 있게 감동을 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통해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약속, 능력, 주권을 통해서 내가 믿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에 절대 아닙니다.

내가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받았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내 스스로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를 알면 이 믿음은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금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 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준다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이 안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니까 작은 부인인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 아들이 13살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아들을 보고 약속을 받았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에게 자녀를 주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 하실 때 누가 웃었습니까? 사라가 웃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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