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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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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그리스도편지 작성일 :작성일 :12-12-24 10:41 조회 : 1,218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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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베드로전서1:15-16절을 보겠습니다. (신 177쪽)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성화

성경에 성화라는 직접적인 단어는 없습니다.

같은 뜻으로 거룩함이라는 단어가 기록이 되어 있고 이 거룩함에 대한 문제가 교회 안에서 정확한 정의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도입니다

성도라는 뜻 자체가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도로서 보인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바로 알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이 되고 또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율배반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진리가 바로 세워지기도 전에 웨슬레알미니안주의가 탄생을 하게 되면서 성화주의가 교회 안에 서서히 잠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중세에는 거의 귀족들에 의해 종교가 운영이 되었고 또 서민들에게는 교회는 꿈과 같은 것으로 보여 지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서민들 가운데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중산층들을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그들의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시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양반이 있고 백성이 있었습니다. 사대부와 백성들 사이에는 많은 규례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양반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양반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배웠고 그들은 그렇게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밥을 굶고도 그들은 숭늉을 마시면서 이를 쑤시고 배가 부르게 밥을 먹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 주어야만 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규례들이 있었는데 일반 백성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그들이 중산층이 되다 보니까 그들을 교회가 가르치기 시작을 했고 그들을 통해서 교회가 일을 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성화주의가 싹트기 시작을 했다고 생각을 하면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불행합니다.

선교 120년이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 보던 시대가 어떤 때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거의 미국을 통해서 복음이 들어왔는데 그때 미국에는 중산층이 두텁게 생겨나기 시작을 한 때고 그들을 통해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중에 하나인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의 삶은 극도로 가난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바로 그 후에 일본의 강점에 의해서 국민들은 소망이 끊기고 젊은 사람들이 술로 찌들어 살던 시대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시대에 미국의 중산층을 가르쳤던 교회도 그렇고 또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복음을 전하려다 보니까 그들을 계몽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바로 성화입니다

그것이 너무도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가난했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면서 그들의 눈에 너무도 무질서 했던 우리나라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성화가 필요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술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화 당연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질주를 해 왔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서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에서는 누구도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그것이 복음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거룩하니까 아들에게 너도 거룩하게 살아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버지가 거룩한데 그 아들이 아무렇게나 살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 욕은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들이 개판으로 살면 그 아버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다시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거룩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버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면 아들의 행동을 보고 그 아버지를 평가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이지가 않는 영이십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아버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하물며 세상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 사람은 당연히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5:48절을 보겠습니다. (신 7쪽)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거룩 하라, 온전 하라,

참으로 부담스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에 나온 모든 사람들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자기도 온전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방종을 하면서 아무렇게나 살기를 바라면서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똑같습니다.

복음송가에서도 가사가 있지만 우리는 누구나 예수님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하여 늘 스스로 정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전해 지고 싶은데 전혀 온전해 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때로는 절망감에 빠져 들어가 믿음까지도 의심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민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도 실제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그렇게 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스스로 회의감에 빠져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했으면 이제쯤이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편하게 해 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 아들이 있습니다. 모든 아버지는 그 아들이 바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준이 조금 높을 수 있다는 말 입니다 왜 그것은 아들로 인하여 아버지가 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예절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웃 어른이 오면 먼저 가르치는 것이 인사입니다

 

아직 말로 못하는 어린 아이에게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이웃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사를 못한다 해서 아들을 때리거나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좀 개구쟁이라서 이웃 어른에게 함부로 대한다고 해서 자기 아들이 아니라고 말할 아버지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체면이 서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경에는 이런 의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성화가 있습니다.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끊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 지지 않으면 호적을 정리를 해서 부자지간의 연을 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아들이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해를 하면 안 됩니다.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 하라 말씀을 했습니다. 또한 내가 온전한 것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온전하지 않으면 부자지간의 연을 끊어버리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라 다만 그렇게 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오해를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아버지는 전혀 그런 뜻에서 말씀을 한 것이 아닌데 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들 스스로 부자지간의 연을 끊어버리는 불행한 일이 발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주장을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요구에 따라가지를 못한다 해서 아들을 호적에서 정리를 하겠습니까? 때로는 혼을 내기고 하고 때로는 달레기도 하면서 그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아버지는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절대로 호적에서 정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 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아주 망나니가 된다 해도 아버지는 절대 호적 정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성화가 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정죄에 빠져 아버지와 호적을 자기가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마음에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가봐 아들이 될 수 없어 하면서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성화에 대해서 잘못 받아들이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요구를 마치 아버지와 같이 살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가는 스스로 정죄에 빠져 믿음을 포기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화에 대해서 잘못 이해를 하면 그리고 어떻게 성화가 되어야 하는 가를 모르면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고 또 성화주의에 빠져 헤어 나오지를 못하게 됩니다.

 

교계에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성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화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성화에 대한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화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구원 문제가 확실해지지가 않습니다. 아니 믿음 자체가 심하게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화를 주장하고 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성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성화는 점진적인가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조직신학 책을 보면 성화는 점진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화는 점진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 구원을 받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성화 되어 가야 하는데 어느 기준을 정해 놓고 성화가 되지 못하면 마치 구원에서 탈락을 할 것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이 사실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화를 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간 역사를 설명합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넙니다. 그 홍해를 건너는 것을 믿음으로 1차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광야 생활에서 성화 생활을 살아야 하고 성화되지 못한 사람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 합니다

 

1차 구원 받은 사람이 성화가 되어야 가나안땅에 들어 갈 수 있다 영적으로는 영화 구원을 받아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성막론을 통해서 성막안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1차 구원을 받았다고 말 합니다 성막 안에 들어가면 물두멍이 있습니다. 물두멍에서 매일 매일 씻어서 성화 되어야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날마다 씻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 합니다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지금 교계 안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목사에게 많은 목사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성화가 안 되어 있고 또 성화가 되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고 힘주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은 성막의 뜰에 들어 온 것을 말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화가 되어야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외적인 성화를 구원과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앞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요구를 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구원과 연결을 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해 져야 하는 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육체적으로 완전하게 거룩해 지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는 성화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떡상 촛대 이런 것들의 의미들이 있는데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하는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절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 합니다 구원 받을 수 없다고 말 합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으로 성소에서 얼마를 봉사하고 헌신하고 해야 하는 기준을 정확하게 제시하지를 못 합니다 막연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만 하지 그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주장하면 막연하게 말하지 말고 정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빨리 포기할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하지도 못할 것을 계속 강요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술을 못 끊습니다. 그 사람은 술 때문에 정죄에 빠져 결국 사망에 그를 것 아닙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면서 구원에 대해서 바로 가르치는 사람들을 향해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성화를 하려고 하는 자체가 음행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목사에게 매주 수백 명에서 수천 명씩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차 구원 받은 사람이 성화가 되어서 영화로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2단계 구원을 주장 합니다

 

많은 신학교에서 지금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 성화에 대해서 은근히 구원과 연결을 시키고 있고 성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마음에서 생각을 합니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구원을 받겠어! 하면서 그 사람을 정죄를 하고 있는데 그 정죄가 결국에는 자기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성화라고 하는 말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성화라고 하는 말은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성화라고 말 합니다 성화되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화에 대해 확실하게 깨닫는 것이 중요 합니다

어느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진리에 대해서 바로 깨닫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성화 문제가 확실해야 합니다.

성화는 점진적입니까?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거의 모든 조직신학 책에는 성화는 점진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화는 점진적이라고 말 합니다 자기들이 성화에 대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유명한 조직신학자들이 쓴 책을 예로 들면서 성화는 점진적이라고 말 합니다

 

구약당시 성화의 뜻을 밝힌 것부터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29:5절을 보겠습니다. (구 694쪽)

“저희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하라”

 

성결케 하라고 말씀합니다.

구약당시에도 거룩하게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성결이나 거룩이나 같은 말씀입니다

더러운 것에서 성결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함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 합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죄를 안 짓고 사는 것을 성화, 거룩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화, 거룩함을 말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먼저 이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성화되는 것을 먼저 생각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화, 거룩함은 분리시켜 놓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혜미야13:3절을 보겠습니다. (구 747쪽)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70년을 살아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방에 가서 포로로 살다 보니까 자기 민족끼리 혼인을 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과 혼인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순수 혈통을 주장했고 또 성경에서도 이방인과 혼인을 하지 말라고 율법에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때 귀향한 민족 중에 혼합된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섞인 무리들을 분리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이 깨끗해지는 것을 성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과 분리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성화는 이렇게 분리되는 것을 말 합니다

 

하나님께서 별도로 분리시켜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사는 동안에 우리가 깨끗하게 사는 것만 생각 합니다 진정한 성화의 뜻은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들을 특별히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더러운 백성을 분리 시켜놓았습니다 이렇게 분리하고 골라놓은 백성이 거룩한 백성입니다 더러운 백성을 분리하고 남아 있는 백성을 거룩한 백성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에 나오는 순수한 이스라엘 혈통을 구분해서 분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1:5절을 보겠습니다. (구 1050쪽)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복중에 있기 전에 너를 구별했다고 말씀합니다.

예레미야를 복중에 짓기 전에부터 구별해 놓았습니다. 구별해 놓은 것은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해 놓았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지자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또 따로 구별해서 부르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선지자나 제자는 구원을 받아도 자기는 구원을 못 받는 다는 말이나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선지자나 제자들을 물론 특별히 사용하신 것은 분명하지만 믿음 안에 있는 성도는 그 사람과 같이 부르셔서 구별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늘 차별을 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화라는 말은 하나님의 신이 사람들을 거룩하지 못한 사람 중에서 별도로 분리해 놓았다는 그런 뜻입니다

 

이 분리가 초대교회에 와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1:7절을 보겠습니다. (신 239쪽)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한노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랑하심을 입은 자를, 성도라고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이 거룩한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내가 깨끗하게 살아서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구별해서 부르심을 입어서 거룩해 졌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전서1:2절을 보겠습니다. (신 263쪽)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예수 안에서 거룩해 졌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는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룩해진 백성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들을 성도라 부릅니다. 거룩한 백성이라 부른다고 말씀 합니다

 

성경에 성도라는 말이 약90회 정도 나옵니다.

 

성도는 쉬운 말로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점진적으로 거룩해져서 나중에 가서 성화된다면 거룩한 백성이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지금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지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거룩해 지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거룩한 백성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라 부르는 것은 성화가 되었다는 말 입니다

성화가 안 되었다면 성도라고 해서는 안 되고 그냥 백성이라는 말로 대신해야 합니다.

앞에 성화는 점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교회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화가 다 된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은 죽을 때 까지 해도 육체적으로는 성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육체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성도라고 부른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성화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사람을 성도라고 부르면서 성화가 되어야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논리입니다. 서로 맞는 말이 안 되고 성립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아주 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교회 안에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하는 말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성화는 점진적이면서 평생 해야 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구별해서 놓은 백성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거룩하게 된 사람 있습니까?

그래서 말 합니다 평생 거룩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여러분이 죽을 때가 되면 거룩해 질 것 같습니까?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보면 판단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수십 년을 해 보고도 아직도 그런 말에 미혹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일이년 해 보았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도 이상하게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맹목적이 됩니다.

 

성화는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성화요 하나는 육적인 성화입니다 육적인 성화는 평생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화가 어떻게 단번에 이루어지는 가를 보겠습니다.

 

히브리서10:10절을 보겠습니다. (신 363쪽)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거룩함을 얻을 것입니까? 얻었습니까?

얻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단번에 되었습니다. 단번에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림으로 단번에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나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의인입니다

단번에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내가 죄를 안 짓고 깨끗해 져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와서 내가 예수님의 의를 가졌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단번에 되는 것이지 점진적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한 것만을 생각 합니다

내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해 준 것도 내가 한 것이나 마찬 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사업을 하다 망해서 10억의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은 내가 평생을 벌어도 못 갚습니다. 일평생을 벌어도 못 갚을 빚을 부자가 와서 그 빚을 갚아 주었습니다. 그럼 그 빚이 차츰 갚아 지는 것입니까? 단번에 갚아지는 것입니까 이것은 단번에 갚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빚을 단번에 한꺼번에 갚아 버리셨습니다.

단번에 갚으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 빚을 다 가져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이것이 안 믿어지는 것 같습니다 빚을 갚는 방법을 할부만 생각해서 그런 가 봅니다 너무 큰 빚이라서 할부로만 갚으려고 합니다. 나도 같이 노력해서 할부를 갚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이 무엇이 부족하셔서 할부로 갚겠습니까.

 

나의 일평생 죄를 다 가져가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 평생 죄가 아니라 내가 예수 믿을 때까지의 죄만 가져갔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거룩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우리 죄 값을 갚아 주셨습니까?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갚아 주셨습니다. 그럼 나라는 존재는 태어나기도 전이고 형질도 없었을 때입니다

 

이미 그때 다 갚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믿을 때까지의 죄만 갚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오셔서 오늘 내 죄를 갚았다면 믿기 전에까지만 갚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죽을 때까지의 죄의 값을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오셔서 우리 죄 값을 갚았다면 내 평생의 죄 값을 갚은 것이 맞는 것 아닙니까? 성도는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내 죄를 모두 갚으셨다는 것을 믿을 때 바로 그 순간 의인이 되어서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하여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무리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단번에 성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단번에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림으로 거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린 것과 나 개인의 삶의 행위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과는 상관없이 예수님이 드려진 것을 믿음으로서 거룩해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6:9-10절을 보겠습니다. (신 269쪽)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 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음란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 중에 하나도 걸리는 것이 없습니까?

후욕하는 자라고 했는데 이것은 남을 꾸짖으면서 욕하는 사람입니다 뒤 돌아서서 욕하는 사람 참 많은 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도 안 걸립니까?

 

복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질문 합니다

여기 성경을 보라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질문 합니다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 합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 한다 성화 되어야만 구원 받는 다고 말 합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불의한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불의한 자입니까? 불의하지 않은 자입니까?

 

불의한 사람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골로새서에 말씀합니다. 탐심 없는 사람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탐심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이런 성경 구절들을 찾아서 반박하면서 계속 성화 되어서 점점 다 될 때쯤 되면 천국 들어갈 만큼 되면 천국 가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것 다 못 되서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 다음 성경 절을 안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6:11절을 보겠습니다. (신 269쪽)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불의한 자는 천국에 못갑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한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 사람들은 못 들어가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것에 대한 죄 값을 다 지불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내가 한 것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것을 얻은 것입니까?

이 모든 더러운 것을 씻어 버렸습니다. 거룩하게 하셨고 의롭다 함을 얻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된 사람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성화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성화 되었는데 평생토록 점점 노력해서 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성화가 안 된 것입니다

 

성화가 안 되었기 때문에 성화 되어서 구원 받으려 노력합니다.

성화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되기 때문에 지옥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성화가 안 됩니다 우리 노력으로는 성화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거룩하지 못한 것들을 다 없애버리시고 우리를 성화 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6장9-10절 말씀은 문자적으로 나쁘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너무도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간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실은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영적으로 간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다 영적인 의미가 있는 말씀이지 문자적으로만 보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너무 좋게 보입니다.

술 취하는 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음란, 우상 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람, 술 취하는 자, 토색하는 자 등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영적인 의미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알면서도 하고 또 모르면서도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거룩해 질 수가 없습니다.

육적으로 해도 거룩해 질 수 없고 또 영적으로 해도 우리는 거룩해 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이러한 행위들을 보면서 스스로 거룩해 지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도 거룩해 질 수 없고 또 의롭게 살고자 하는 아니 신앙생활을 잘 하고자 하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악으로 변해서 또한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라고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고 하면서 탄식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성화 안 됩니다.

내 의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이 성화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죄이고 또 하나님을 향해서 선하게 살려고 하는 그것이 악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감히 성화에 대해서 강하게 주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포기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가 복음의 은혜를 입었기에 누구보다도 더 육체적으로 성화가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가진 복음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한 것같이 너희도 거룩 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요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늘 구원과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로는 안 그렇다고 주장을 하면서도 사람의 행위가 조금 나쁘면 사람들은 저렇게 해서 구원을 받겠어! 하는 이야기를 하고 또 자기 마음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마음에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사상에 그만큼 빠져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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